최근 경계 청년 증가 추이, 최근 3년 동안 경계 청년 수가 증가하고 있다. 인포/ 김도균 기자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6평 남짓의 한 오피스텔에서 31세 청년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방 한 켠에는 취업을 위해 모아 둔 150장의 이력서가 남겨져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생전 오피스텔 관리비를 3개월 동안 내지 못하는 등 취업 준비(이하 취준) 과정에서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비슷한 시기, 경기도 한 주택에선 24세 청년이 여기저기 쌓인 대출 독촉장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됐다. 
  청년들의 쓸쓸한 죽음은 최근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2019년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순위는 자살이다. 특히 20대 자살률은 전년도 대비 9.6% 증가했는데, 이는 전 연령대 중 가장 가파른 증가세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인 원인을 ‘취업 스트레스’로 진단하고 있다.

경계 청년 첫 일자리 임금, 상당수가 월 200만 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포/ 김도균 기자

경계 청년들의 취업난

  ‘경계 청년’. 취업과 실업 사이 경계에 놓인 청년 취준생을 일컫는 말이다. 통계청의 지난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경계 청년의 수는 85만 9,000명으로, 코로나19 창궐 이전(2019년)보다 무려 14만 5,000명 증가했다. 지난해 5월 80만 4,000명으로 2006년 집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2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이처럼 경계 청년들의 취업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경계 청년들이 취준 과정에서 마주하는 고충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대전 청춘공간 청춘두두두, 카페로 구성된 ‘만나ZONE’ 내부 모습이다. 사진/ 김도균 기자


  기업 채용 위축
  경계 청년 수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취업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ALIO에 따르면 2021년 2분기 공공기관 누적 신규 채용 현황은 11,351명에 그쳤다. 2019년 집계된 41,336명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사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경제신문 CHO인사이트가 주요 사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올해 하반기와 내년 채용 계획 설문조사에서 ‘기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응답이 42%인 반면, ‘늘릴 것’이라는 답변은 14%에 불과했다. ‘축소할 것’, ‘당분간 중단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22%였다. 국내 기업 대부분이 채용 확대에 부정적인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 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가 일시적으로 기업들의 채용에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시기가 지나면 주력 산업 분야는 채용 수준을 회복하겠지만, 구조적 쇠퇴에 놓인 산업 분야는 향후에도 채용을 늘리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취준 환경 악화
  코로나19 대유행도 경계 청년들의 취업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학가에서 이뤄지던 교환학생, 어학연수, 기업 연계 인턴 등 각종 ‘취업 스펙’의 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에 녹아 든 방역 조치는 경계 청년들의 취준 환경에 제약을 더했다.
  지난 3월, 우리 학교 유소정 학우(중어중문·3)는 2학기 중국 자매대학 파견 교환학생에 선발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자 온라인 교육으로 전환됐고, 유 학우는 고민 끝에 결국 프로그램을 취소했다. 유 학우는 “입학허가서까지 받은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돼 교환학생의 의미가 사라졌다”며 “교환학생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었는데 많이 아쉽고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또한 우리 학교 A 학우는 “최근 코로나19까지 겹쳐 양질의 취업 스펙을 구하기 어려워졌다”며 “졸업이 코 앞인데 여전히 취업 스펙이 부족해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사적 모임·행사 등에 인원 제한이 생기면서 경계 청년들의 공모전 준비·그룹 스터디·대외활동 등 대면 활동 계획도 난항을 겪었다. 대외 봉사활동을 진행 중인 우리 학교 B 학우는 “대부분의 계획을 화상회의에서 수립하다 보니 대면 회의보다 진척이 더디다”며 “팀원을 만날 기회가 적어 협동력도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토익·토플 등 공인어학시험에 이어 소방·경찰 등 국가직 공무원 채용시험까지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작년까지 서울 영등포구의 한 기숙학원에서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이찬규(24) 씨는 “거듭된 집합금지 명령으로 학원이 잠정 휴업하면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며 “시험이 두 달 가까이 연기된 마당에 학업계획이 흐트러져 난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경계 청년들의 경제난

  취업 이전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경계 청년들이 최종학교 졸업(중퇴) 후 첫 일자리를 갖기까지 평균 10.1개월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계 청년들은 이 기간에 생활비뿐 아니라 시험 공부·직업 교육·스펙 활동 등으로 많은 돈을 지출한다. 이를 부모님의 용돈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경계 청년들은 취준을 뒤로 한 채 ‘프리터족’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프리터족이란 ‘프리(Free)’와 ‘아르바이트(Arbeit)’의 합성어로, 특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사람을 뜻한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취업이 어려워지자 이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취준만으로도 벅찬 경계 청년들이 노동까지 강요받고 있다.
  우리 학교 C 학우는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 탓에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당장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할 수 있고 부지런한 일상을 보내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다만 형편이 나았다면 취준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을 거로 생각하니 아쉽다”며 한탄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경계 청년들의 연명줄이던 아르바이트마저 한때 품귀 현상을 빚었다. 통계청의 ‘2021년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6월 기준 직원, 아르바이트 등 고용원을 둔 자영업자 수는 128만 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6.5% 감소해 1990년 6월(118만 6,000명) 이후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고용원을 아예 두지 않은 자영업자는 11만 3,000명이나 늘었다. 
  이에 대해 우리 학교 사회학과 최인이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경영난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인건비를 줄이는 일”이라며 “최저임금 인상도 자영업자들의 고용 위축에 간접적인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계적 일상회복 시행 이후 경기회복 양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자영업자들의 손실 규모가 컸던 만큼 코로나19 이전의 고용 수준으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꽤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 
  취업 이후
  애써 가시밭길을 지나 취업에 성공해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5월 기준 첫 일자리가 상용직인 근로자는 전체 임금근로자 중 57.1%에 불과했다. 상용직은 계약 기간이 1년을 넘는 일자리를 의미하는데, 이는 임시직(1개월~1년 미만), 일용직(1개월 미만)보다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로 분류된다. 즉, 10명 중 4명이 실업을 염두에 둔 채 첫 일자리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동일 조사에서 첫 직장에서의 임금이 월 2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전체의 73.3%에 달했다. 4명 중 3명꼴로 월 200만 원 미만의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이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최저임금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러니 청년 세대의 팍팍한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경계 청년들을 위한 지원

  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앞둔 상황 속에서 청년 세대의 부흥은 국가경쟁력 강화, 지방소멸 위기 극복의 열쇠와도 같다. 하지만 경계 청년들의 취업난·경제난은 이미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대전시를 비롯한 지자체는 전담 부서를 마련하고 각종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
  정부가 주도하는 ‘청년 취업역량 프로그램’은 능력중심채용제도(NCS기반채용)에 대비한 구직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총 4일간 집중적인 워크숍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경계 청년들은 자신의 역량과 적합한 기업 및 직무를 탐색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청년취업아카데미’는 경계 청년들이 원하는 직무분야 관련 교육훈련·체험·인턴 프로그램을 무료로 지원한다. 뿐만 아니라 취업연계 연수과정을 수료하면 협약기업 등으로 취업연계 기회를 부여하는 등 경계 청년들이 일자리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다. 이 밖에도 실업급여·직업훈련생계비·청년저축계좌 등 경계 청년들을 위한 금융·경제 지원 정책을 제공하고 있다.
  대전시
  대전시는 중앙정부·지자체·기업 등이 실시하고 있는 청년 정책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알맞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청년인포’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경계 청년들이 업무·그룹 스터디·소모임 등을 위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청춘공간’을 지역 곳곳에 마련했다. 
  지역 내 경계 청년들에게 제공되는 직접적인 지원 방안으로는 경계 청년들의 구직활동을 위한 지원금을 지급하는 ‘청년취업희망카드’가 있다. 이 밖에도 청년주도 일자리·인턴·창업·공익활동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다양한 사업들이 시행되고 있다.

향후 개선과제

  하지만 이러한 정부 주도 청년 정책에는 실효성 논란이 따라붙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계청 고용동향 조사 결과, 올해 구직 단념자는 1년 새 5만 7,000명 늘어 여전히 상승세에 있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의 핵심 청년 정책이 경계 청년들의 취업난·경제난 해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청년 전문 연구기관인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경계 청년을 대상으로 한 자체 조사에서 ‘청년 장기근속·자산형성 지원 대책’이 가장 높은 선호도를 기록한 것을 밝혀냈다. 앞서 언급한 청년취업아카데미, 청년저축계좌 등 직접적인 취업역량·금융 지원 정책보다 취업 전후 안정적인 생활을 지원하는 정책이 경계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이다. 이는 즉, 양산형 정책보단 경계 청년들의 수요에 부합하는 정책을 중심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하거나 요건을 완화하는 등 이들의 정책 체감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한 때임을 보여준다.
  또한 우리 학교 사회복지학과 정연택 교수는 경계 청년들의 취업난·경제난에 대해 민간 차원의 노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날 경계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전 세계 선진국 대부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정부만의 노력과 단기적인 접근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지원 정책과 함께 기업들도 직접 체질 개선에 나서 ‘청년들이 오고 싶은 일자리’를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경계 청년 취업난은 고학력화로 인해 이들의 일자리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진 경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갈수록 대기업·공기업 신입사원 채용 경쟁률은 고공행진을 하는 반면, 실업률·구직 단념자 증가와 함께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2016년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1년 내 퇴사한 중소기업 신입사원 상당수가 급여·복리후생·근무환경 불만을 퇴사 이유로 꼽았다. 결국 취업난 해소를 위해선 일자리 양적 확대는 물론 열악한 중소기업 근로환경과 처우, 고용 안전망 등의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