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 저,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가스통 바슐라르는 서구 이성 중심 세계에서 ‘거짓’이나 ‘오류’의 원천으로 받아들여졌던 감성의 영역이 인간의 삶에 있어 훨씬 구체적으로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성을 기반으로 한 서구 문명의 객관적인 과학의 세계보다 오히려 상상력과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주관적 상상력의 세계가 우위에 있음을 주장해, 상상력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이룩해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이미지와 상상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 능력이자 소중한 능력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상상력의 소산인 창의성과 독창성의 중요성은 매우 강조되고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의 상상력에 기반한 ‘물질 이미지와 이미지의 4원소론’, ‘꿈과 다른 몽상의 시학’, ‘상상력의 현상학’ 등에 대하여 비교적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바슐라르의 이론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서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바슐라르의 이론 중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문화 콤플렉스’라는 개념이었다. ‘문화 콤플렉스’란 인간의 가장 자유로운 정신 활동이어야 할 상상력의 발현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는, 굳어져 있는 이미지의 모듈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예컨대, 서구인이 백조의 이미지를 접하게 되면 이를 자연스럽게 벌거벗은 여인의 이미지로 발전시키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자신이 습득하고 있는 신화들의 한 부분에 의한 연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문화 콤플렉스의 본질은 상상력의 주체가 돼야 할 개인이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에 의해 상상력의 방향 설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데 있다. 그러나 ‘문화’란 사회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것이기에, 이를 무작정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이다. 이에 바슐라르는 ‘문화 콤플렉스’에 대해 ‘상상하는 주체’의 몫을 강조한다. 그는 문화 콤플렉스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 군이라도 오히려 그것을 개인적 상상력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써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문화 콤플렉스를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는 문제는 상상하는 주체의 포용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능력임을 밝혀낸 바슐라르의 입장은 오늘날의 현대 사회를 성찰하게 만든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은 길거리에 범람하고 있는 이미지들과는 달리 각 개인의 삶에서는 빈곤한 이미지 내지는 허약한 상상력에 시달리고 있다. 한편, 역설적이게도 사회는 그런 그들에게 ‘개인적 창의성’만을 의도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 바슐라르는 ‘문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낼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해 준다. “상상력을 회복시키고, 시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상력의 포용력을 가지고 ‘문화 콤플렉스’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상상하는 주체’에게 달려 있다는 바슐라르의 입장은 무엇보다도 현대인들에게 ‘문화’ 속 넘쳐나는 이미지들을 비판 의식 없이 수용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학기의 마무리를 달려가는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틈이 나는 시간에 학업과 무관한 새로운 책을 읽고 싶은 순간들이 생긴다. 이러한 상황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에 한 시간 정도면 훌쩍 읽어낼 수 있는 분량, 당장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책이면 매우 좋다. 그렇게 내가 이동 시간에 간편히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집어 들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문화 콤플렉스’와 현대사회에 넘쳐나는 이미지에 대해 사유해 보게 된 것은 나로서는 뜻밖의 깨달음이 됐다.
  나처럼 독서에 대한 갈증은 있으나 치열한 삶 때문에 무엇을 읽을지 고민된다면, 이 책을 포함하는 ‘살림지식총서’ 시리즈물을 권하고 싶다. 부담스럽지 않은 양과 두께, 그리고 다양한 주제를 생각보다 깊이 있게 담고 있어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차진명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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