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숲

                                               황인찬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함께 곧 12월이 다가옵니다. 저는 겨울 하면 먹먹한 쓸쓸함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요, 이번 연재는 그 쓸쓸함과 어울리는 시입니다.
  이 시의 상황은 이러합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무화과 숲으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았고, 화자는 쌀을 씻으면서 그 숲을 봅니다. 그리고는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지요. 밤에는 눈을 감고 사랑을 해도 혼나지 않는 꿈을 꿉니다. 밥을 먹고 숲을 바라보고, 꿈을 꾸고. 그러나 이 단조로운 상황이 문장으로 엮이니 어쩐지 슬프게 느껴집니다.
  그것의 이유는 시가 어떤 일이 일어난 이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화자가 소중하게 여긴 어느 누군가는 떠났지만, 화자의 삶은 계속 이어집니다.
  화자는 쌀을 씻어 먹을 밥을 매번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쓸쓸한 마음은 삶이 편하게 흘러가게 놔두지 않습니다. 잠을 자고 아침과 저녁에 밥을 먹는 모든 생활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이 당연한 일상에 굳은 의지가 필요해지죠. 화자는 다짐을 하며 쓸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독거려 봅니다. 
  밤에 화자는 꿈을 꿉니다. ‘밤에는 눈을 감았다/사랑을 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여러분은 이 문장을 보고 어떠한 느낌이 드시나요? 또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에서는 화자의 어떠한 모습이 느껴지시나요? 저는 겉으로는 무덤덤하고 차분해 보이지만, 내면으로는 그 사람을 아직 잊지 못한 화자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사랑이 사라진 화자의 숲, 즉 더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화자는 꿈에서만큼이라도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학우 여러분들도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겉으로는 무덤덤하게 계속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경험을 한 뒤에는 삶이 그저 견뎌야 하는 일임에 그칠 수밖에 없지요. 단순하지만 쓸쓸한 시입니다. 일부러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문체를 보고 있으니 더 슬퍼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학우 여러분들이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을 밤이 아니라 낮에 꿀 수 있기를 바라며, 누군가를 잃어버린 겨울이 조금은 덜 춥게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박시현(국어국문학·3)
@garnetstar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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