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의 지각

  뜨거웠던 햇살이 무안하게 떨어지는 물든 나뭇잎 사이로 가을이 물들어 가고 있다. 아침마다 피부로 느껴지는 다소 차가운 공기는 이제 눈앞까지 다가온 가을의 존재를 실감하게 한다. 오락가락하며 옷차림을 곤란하게 하는 변덕이 있지만 나는 이 계절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을의 변덕을 용서할 수 있는 것처럼 애정이라는 감정은 신비롭다. 이유도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 대상이 계절이 될 수도, 음식이 될 수도,  강아지가 될 수도,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좋아할 대상이 많다는 점은 우리의 얼굴에 미소를 띨 일이 많아진다는 점과 같다.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자. 그곳에 나와 마주한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가, 힘들어 보이는가, 아니면 불쌍해 보이는가? 적어도 그 사람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내가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거울을 들여다보자. 그 친구의 머리모양과 눈썹, 코, 입, 어깨, 마지막으로 눈을 바라보자. 아마 거울 속의 친구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이는가? 그 친구는 빛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어린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어렵다. 가끔 내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내가 싫어하는 짓이 무엇인지 공부하고 있는 것 같다. 나를 좋아하기 힘들다면 먼저 나는 나를 알고 있는지 생각하자. 이 점은 전의 생각보다 조금 더 난이도가 있다.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잃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지금 한번 떠올려 보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풀어가는 가? 그리고 어떤 순간에 행복하게 웃는가? 마지막으로 이러한 질문을 받았을 때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빈 흰색 종이를 눈앞에 두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번 적어보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길수록 좋다. 나를 웃을 수 있게 만드는 그 소중한 것들의 이름을 한번 눈으로 바라보자. 언젠가 웃음을 찾고 싶을 때 바라볼 수 있도록, 자세하게 적어 내려가자. 나를 좋아하기 위해 사소하지만 필수적인 시작점이 돼 줄 것이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각자 자신에게 가장 무심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린 나 자신의 이야기를 어루만져 줄 필요가 있다.
  가을 아침 맨살에 느껴지는 차갑고 축축하지 않은 공기의 온도, 저녁 시간 방 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본 무지갯빛 하늘에 걸린 초승달, 그 시간에 즐기는 산책, 불 꺼진 방안에 홀로 켜져 있는 무드 등과 함께 멍 때리기, 따뜻한 이불 속에서 쿠션에 기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는 만화책, 일주일에 한 번 밀린 예능을 보는 시간, 어두워진 하늘 아래 바람을 열어두고 약한 스탠드 빛 아래에서 혼자 하는 공부, 거실 바닥에서 색연필을 늘어뜨리고 하는 색칠, 물감을 늘어뜨리고 하는 그림 그리기, 땀이 가득해질 정도로 배드민턴 치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떠드는 시간, 오래된 친구와 함께 말없이 침묵으로 채우는 시간.
 

권사랑 (정보통계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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