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자격

  엊그제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왔다가 빨간 조끼를 입은 세 명의 여성이 정문 근처에 모여 서 계신 걸 봤다. 조끼에 글자가 써있기에 노동조합에서 나온 분들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한 허경영 씨의 지지자분들이었다. “허경영이 대통령 되면 한 달에 10만 원씩 준다고 합니다.”, “젊은이들 허경영 뽑으면 살기 좋아집니다.” 같은 구호를 열심히 외치고 있었다.
  2022년 3월 9일에는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거대 정당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토론회와 ‘대국민 참여’를 슬로건으로 내건 비당원 경선제, 지역 경선제 등을 도입해 대선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려 애썼다. 몇 개의 정당에서는 이미 본선에 출마할 대선 후보가 확정됐고, 일부 정당은 그 과정 중에 있다. 경선이 대통령 선출 아닌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선거인데도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는 이유는 이것이 내부 경쟁이라는 데 있다.
  한 정당에 소속된 인물들은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작은 면적에 비해 많은 인구, 급속한 근대화로 인한 세대 갈등, 계층 분리,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인한 경쟁 심화, 수천 년 전부터 이어진 지역 차별과 성별 격차, 냉전 이데올로기의 흔적 등은 넓고 복잡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낳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와 동일한 정치적 스탠스를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은 거대 양당제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한 정당 내에도 의견이 전혀 다른 인물이 존재할 수 있다. 구성원의 다원화는-사실 성별, 계층, 출신 면에서 그다지 다양성을 갖추진 못했지만-집단의 객관성과 발전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런데 사상뿐 아니라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라는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하다 보니 평소엔 당론에 입각해 조용히 협력 정치를 펼치던 이들도 완전한 적이 된다. 서로의 먼지 한 톨까지 깨끗하게 털어 대중에 내보이는 대결 구도를 형성하니 국민들은 더욱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욕설, 스캔들, 미신이라는 논란거리부터 비리, 전과, 부패 의혹까지 서로를 비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동원된다. 경선 후보들이 SNS와 기자회견에서 쏟아내는 언어는 즉각 기사화되고 우리는 거기에 달리는 여론의 범람에 파묻힌다. 어떤 말은 옳지 않아도 박수를 받고 어떤 행위는 옳아도 주목받지 못한다. 여기서 대통령 후보 경선의 목적을 다시 생각한다.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을 선출하는 과정인가, 매력 포인트를 전시하는 선거 시장인가? 우리는 대단한 쇼의 관객이 아니라 후보자 검증 절차 중에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그것을 획득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이 입증하듯이, 막대한 권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역할은 한정된 사회적 자본을 ‘잘’ 나누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가 계속 약자로 머물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이해집단의 갈등을 조정하고 계층 간 격차를 줄여 혼란 대신 소통을 이끌어야 한다. 문제를 왜곡시키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그만큼의 권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권력을 성찰하며 국민의 삶을 들여다보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쇼는 이러한 본질을 흐리고 노이즈와 아우성으로 주의를 분산시킨다.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눈속임에 끌려가지 않아야 한다. 경선과 본선을 통과하며 대통령 선거일에 당도할 때까지 대통령에 대한 본인의 기준이 무엇인지 나와 가치관이 통하는 후보는 누구인지 살펴야 한다. 대통령 선거의 과정은 결코 재미로만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공연화 (여성젠더학과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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