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 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곳에 편지를 쓴다. 일기는 그런 거니까. 보내지 못할 편지라든가 다시 읽지 않을 마음들을 쓰는 공간이기도 하니까.
  내일모레는 상담을 받는 날이다. 언젠가 상담 선생님께 내가 너를 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흐르지 않을 것 같던 눈물을 처음으로 흘린 날이었다. 그동안 상담 선생님 앞에서 우는 것을 창피하다 생각했던 나는 상담실 책상 가까이 있는 휴지를 쓰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여겨왔었다. 그런데 그날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내가 울어버린 것이다. 생각지 못한 시점에 툭 떨어진 마음을 나는 무어라 정의할 수 없었다. 너에 대한 미련이라 해야 할지, 나의 이기적인 마음에 대한 죄책감이라 해야 할지. 그런 건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울 수밖에 없던 마음. 그냥 그렇게 정하기로 했다.
  이제는 그날로부터 아주 많이 멀어진 기분이 든다. 여전히 약을 먹는 모습에 아직도 아픈 것이냐 묻는 사람에게는 신빙성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죽고 싶었던 날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다. 그런 날들을 살아온 내가 가엾게 여겨지는 날이 온 걸 보면, 역시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여전히 네가 자주 생각난다.
  작년 이맘때였다. 죽겠다는 다짐으로 몇 줄의 유서를 끄적이고 집을 뛰쳐나간 것이. 네가 모르는 척 등을 돌리고 있던 것이.
  너는 자주 너를 미워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나를 미워했고. 그런 게 잘못된 것이라고 배운 적이 없어서 자꾸만 엇나갔다.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야만 해서 하면 안 되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너는 내가 가장 의지했던 사람이었기에 내게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저 적당한, 그래서 오래 갈 수 있는 관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나친 의지는 그 사람을 꺾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네가 사라지면 남는 건 주저앉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너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네가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네가 없는 것을 못 견디게 불안해 했던 사람이었기도 했고. 피곤한 너에게 불안한 내가 기댄 건 불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너와 나에게.
  자주 읽는 소설에 등장하는 무너진 관계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하곤 했다. 그게 우리와 조금 닮았다는 걸 모른 척하며.
  우리에게 다가올 이별이 뭉툭한 것이었다면, 닿아도 쓰라린 기억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너는 여기에 어떤 것은 남은 채로, 어떤 것은 사라져도 모르는 채로, 혹은 잊어버린 채로 살고 있다.

 

안미진 (국어국문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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