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장소’라는 언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푸 투안의 『공간과 장소』를 읽으면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물질적인 것은 언제나 공간 안에 들어서는 방식으로 존재하며, 공간은 그렇게 사물들과 사람들 곁을 에워싼다. 한 사람은 평생의 삶 가운데 수많은 공간을 누비면서 살아가지만, 일상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모든 공간들까지 다 기억에 담아두지는 못한다. 그런데, 어떤 특별한 공간은 주체의 의지와 의도에 따라 추억, 애정 등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기도 한다. 이-푸 투안은 바로 이러한 점에 천착하여 전자의 경우를 ‘공간’으로 후자의 경우를 ‘장소’로 정의하여 구별한다. 그는 우리의 경험과 삶 그리고 애착이 녹아든다면 그곳은 공간이 아닌 이동 중 정지하는 ‘장소’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푸 투안에 따르면 공간의 광활함은 자유롭다는 느낌과 밀접하게 연관되며, 장소는 공간에 비해 비교적 과밀하며 안정감을 주는 특성을 지닌다. 물론 공간이 주는 광활함과 과밀함의 감정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이란 존재가 개방된 공간에서는 장소에 대한 열망을 품고 안전한 장소에서는 광활한 공간에 대한 열망을 품는다는 것이다.
  문학 전공자인 나는 이 책에서 문학에서의 장소 이미지에 대해 언급된 부분을 특히나 더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는 문학 자체에 장소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으며, 문학 작품이 장소들에서 우리가 겪은 친밀한 경험들을 잘 포착해 준다고 말한다. 문학 작품 속 장소 이미지들은 통찰력 있는 작가들의 상상력에 의해 환기된 것이라는 점에서, 장소 이미지를 살펴보는 것은 “예술이 비추는 빛으로 우리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수 있었을 경험들을 다시금 맛보는 특권을 얻은 것”(78)이 된다. 마침, 정지용 시인의 시를 읽고 있던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바로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를 떠올렸다. <향수>에서 “참하 꿈엔들 잊힐리”가 없는 “그곳”은 시인의 고향 옥천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안정감 있고 아늑한 고향은 특히나 인간에게 있어 내적으로 친밀한 장소이므로, 시 <향수>는 ‘장소화된 공간’인 고향 충북 ‘옥천’에 대한 시인의 향수를 표현해내고 있는 시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충북 옥천에 살고 있는 나는 이처럼 <향수>에서의 장소 이미지가 주는 향수감에 쉽게 공감하고 감응되었다. 아마도 이것은 이-푸 투안이 주장하는 것처럼 <향수>의 ‘장소’인 옥천이 가치의 중심지로 부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옥천은 ‘향수의 고장 옥천’이라는 언어적 표상을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나는 『공간과 장소』를 통해 ‘향수의 고장 옥천’이라는 기표에는 ‘옥천이 향수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소화된 공간’이라는 의미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장소 이미지의 예시로 정지용의 <향수>를 떠올렸던 것처럼, 누군가는 이 책의 내용과 연관하여 색다른 사유와 상상력을 펼쳐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만 머물고 있던 소중한 “그곳”들을 현재에 다시 소환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되리라 생각한다. 만약 자신만의 애틋한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좀 더 분명한 언어로 표현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간과 장소』의 도움을 받아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이 글에서 언급된 내용은 책의 일부분이며, 『공간과 장소』에서 이-푸 투안은 ‘공간과 장소’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을 통해 자신만의 깊은 통찰을 풍성히 이끌어낸다. 그렇지만 그 내용의 난이도가 높다는 말은 아니다. 조금의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앉은 자리에서 술술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차진명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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