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의 위로

  친구에게 시집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벚꽃이 흩날리던 날, 그 친구는 나의 얼굴도 보지 않고 내 사물함에 작은 쪽지와 함께 책을 한 권 넣어두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와서 사물함을 확인해보라는 짧은 말과 함께 급히 사라졌다. 파란색 양장이 은은하게 빛나던 시집이었다.
  여러 가지 변수들로 꼬이는 나의 삶을 바라보며 힘들었던 시기였다. 모두가 나를 안아주었고 감당하기 버거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 친구만은 나의 얼굴도 마주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들려주지도 않았고 눈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묻지 않아 주었음에 감사했고 마주 보지 않았음에 고마웠다. 그 시집을 들고서 한동안 기운이 났다. 심리적으로 괴로웠던 그 순간 속 잠시나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네 맘을 다 이해한다는 사람들의 말들이 너무나도 야속했던 나는 항상 의심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오고 가는 수많은 말 속에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을 과대평가하지는 않았는지 혹은 과소평가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한 말이 오해를 사지는 않았는지. 그 사람이 나에게 원하는 반응이 있었는지. 내가 해야 하는 말이 있었는지. 감정은 듣는 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말은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한다.
  공감한다는 말은 무책임하다. 사람들은 100%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감정과 그 순간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뜻이기에 가볍게 쓰여서는 안 된다.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사연과 수많은 사건의 열쇠고리들, 그 사람이 그 이야기를 겪을 때의 상황과 그 사람의 위치와 마음가짐. 이것들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거쳐 감정이라는 형태로 전달된다. 눈물 한 방울에 담긴 의미를 슬픔이라고 단순하게 치부할 수가 없기에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을 감히 안아 줄 수 없었다.
  아직도 난 고통 속에 잠겨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 무섭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위로해야 할 때 항상 난감함을 느꼈다. 누군가의 손을 붙잡아 줄 수 있는 만큼 내 손은 따듯하지 않았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기에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내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지. 나에게 그 사람의 감정을 듣고 이해할 권한이 있는지. ‘그런 권한이 있다’와는 별개로 감히 다른 사람의 구역에 침범하는 것이 가능한지. 나에겐 위로하기 위해 거쳐야 할 일종의 준비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진심 어린 위로가 가능한가? 친구에게 시집을 받기 전까지 나는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타인의 생각을 알아내기란 어렵다.
  그러니 나는 인정해야 했다. 그 사람이 나의 감정을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과 나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된다. 위로에는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이해해서 공감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을 인정하고, 그 감정을 믿어주는 것이다.
 

권사랑 (정보통계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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