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 기어

오지윤 기자,  언론정보학과

  지난 2012년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티아라는 같은 멤버였던 화영 왕따 사건으로 한순간에 팬들의 신뢰를 잃었다. 이 사건은 ‘티아라 왕따 사건’으로 불리며 수많은 왕따 증거 영상들과 함께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흐른 후 사건의 내막은 왕따가 아닌 단순 다툼으로 밝혀졌다. 당시 사람들은 화영이 피해자로 보이는 상황에 몰입해 눈과 귀를 막은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네티즌들은 ‘중립 기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중립 기어는 자동차 기어 조작 상태에서 파생된 단어로 ‘한쪽의 입장만을 듣고 판단하지 말자’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첨예한 이슈나 법정 공방 혹은 양측의 잘못을 따지는 사안이 제기됐을 때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양측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보자는 뜻에서 생겨났다. 자세한 의미는 실제 자동차의 ‘중립기어’와 약간 다르지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균형’이다. 대중들은 내막을 알 수 없는 사안이 발생할 시, “중립 기어 박는다”고 표현하며 편견을 갖지 않고 시각을 다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단순 신조어나 언어 유희로 여겨지지 않는다. '중립 기어'는 실상을 알 수 없는 사회적 사안에 대중이 일방적으로 매몰되지 않고 깊이 고찰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지난 4월 한강에서 실종된 한 학생이 끝내 숨진 채로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故 손정민 씨는 실종된 지 5일이 지난 30일 한강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는 실종되기 전 한강에서 친구 A 씨와 함께 음주 후 잠에 들었고 A 씨는 故 손정민 씨를 두고 홀로 귀가했다. 이 사건은 술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막을 내리는 듯했지만, 네티즌들은 사건 당일 A 씨의 행동과 정황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A 씨는 故 손정민 씨를 두고 홀로 귀가하고 단서가 될 수 있는 물건을 버리고, 故 손정민 씨의 장례식에 조문하러 오지 않는 등의 행동으로 많은 사람의 의심을 사고 있다. 네티즌은 친구 A 씨의 신상을 온라인에 그대로 노출하고 A 씨를 이미 살인자로 기정사실화하는 여론을 형성했다. 
  한편으로는 조사 과정이나 증거에 있어 A씨의 범행을 입증하기 어렵고 故 손정민 씨의 죽음은 사건이 아니라 사고라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조사 결과 현재 물증은 전무하며, A 씨도 변호사를 고용해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섣부른 판단보다는 법적 절차 등 진행 상황을 신중히 지켜봐야 한다는 중립 기어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온라인 공론장에서 펼쳐지는 모든 이슈엔 분명 진실이 존재한다. 정확한 사실관계가 입증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중립적인 태도를 넘을 수도 있어야 한다. 중립 상태에 기어를 멈춘다는 의미에는 사건을 탐구하는 면에서 적극성이 결여돼 있고, 그렇게 된다면 사실이 확인되는 것마저 인지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온라인을 통해서만 접하는 이슈의 진위를 가리기는 어렵다. 모든 이슈에 관심을 갖고 경계를 놓치지는 않되 사실관계가 확정되기 전에는 확단하지 않아야 한다. 양측의 사실관계가 파악되기 전 한 측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것이 온라인 이슈가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 우리가 본질적으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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