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별을 위한 편지

  소용 없는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당신의 머리카락에 묻은 유언을 쓸어담다가 문득 사라지고 싶었다 생각을 하면 무수해진 당신들이 나를 쳐다본다 눈동자가 바다같아, 어느 시인의 말을 당신이 인용한다 당신의 눈을 오래 들여다보면 바다에 잠긴 내가 있다 당신의 눈에서 발견하는 게 고작 나였다 바다를 빌려주던 당신은 불현듯 너는 정말 너밖에 없구나, 말한다 그렇다고 대답한다 나는 정말 나밖에 없어서 외롭다 피곤해진 당신들이 차례로 눈을 감는다 꼭 감은 눈들 사이에서 나는 나를 찾지 못하는데 당신은  하나씩 없어진다 끝내 하나만 남은 당신도 유언을 마저 다 털어내고 간다 정말 나에게 남은 게 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쓸모 있는 것이 되고 싶었지만 더 외로운 사람이 되기로 한다 당신에게 나는 이젠 소용 없는 일이다 모든 이별이 안녕이라는 말처럼 간단했으면 좋겠다 내가 당신에게 남길 유언은 그래서 아주 짧다
  가장 힘든 시기였던 작년 여름, 마지막 말이라 생각하며 썼던 글이 있다. 서두에 쓴 ‘긴 이별을 위한 편지’라는 글인데, 제목은 페터 한트게의 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에서 따왔다. 내용은 소설과는 무관하지만, 제목이 마음에 들어 차용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그 글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글에 대해 간단히 해석하자면 이렇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 입힐 수밖에 없다. 보통의 우리가 그러다시피 시 속 화자는 타인의 고통보다 자신의 고통을 크게 느낀다. 그래서 자신의 슬픔을 위로해 준 사람의 슬픔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고작 ‘나’인 것이다. 이처럼 화자는 이기적이다. 허나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입히는 자신을 알고 있고 후회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국 화자는 자신의 슬픔에 빠져 주변인들에게 해를 입힌다. 그런 이기적인 화자로부터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고, 화자의 슬픔을 받아줬던 사람마저 떠나고 만다. 그 속에서 화자의 늦은 후회는 갈 길을 잃고 끝내 마지막을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만나지 못하는 우리가 서로에게 남긴 말은 어쩌면 유언이 돼서 평생을 갈지도 모른다. 화자의 마지막 말, 안녕이라는 짧은 말은 화자가 당신들에게 할 수 있는 그나마 배려이며 모든 이별의 상처가 간단했으면 하는 화자의 바람이다.
  가장 위태로웠던 시기에 썼던 만큼 모두가 나를 떠난다고 생각하며 썼던 글이다. 그런데도 남아있는 사람이 있지만, 자꾸 까먹게 되고, 그런 과정이 되풀이되면 소중한 사람을 다시 잃게 되는 그런 모순적인 상황의 연속이었다. 힘든 시간을 마냥 혼자 견뎌내기엔 여전히 힘이 들지만 이러한 과정을 아직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자주 마음이 아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왜 사람은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안미진 (국어국문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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