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논의의 여지는 있되 흔히 근대(近代)는 인본주의, 합리주의 등을 배경으로 시작된다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근대’라는 말에 연루된 ‘근대화’는 더 다의적이고 동시에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그것은 발전된 사회의 한 상태를 뜻하기도 하고, 또한 사회발전의 과정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때로는 민주주의의 진화를 보태 근대성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 사회발전과도 맞물린다. 그렇기에 ‘근대화’는 어느 시점에서 종결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더 나은 것, 더 근대화한 것으로 계속 움직여가기 마련이다. 가장 근대화한 사회에서도 그 사회의 이면에는 여전히 근대화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시대적 진전에 따라 인간은 비로소 인격을 가진 ‘개인’이 됐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 존중해야 하는 사회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법치의 제작자이자 수행자로 자리 잡는다. 그럼에도 이러한 단계적 사고가 꼭 긍정적인 면만을 상정하는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알게 모르게 의도하지 않았던 사회와 환경의 변화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실의 등장이 점점 더 빨라진다는 느낌이다.
  지난해 우울증이나 조울증 같은 기분장애로 병원을 찾은 이들이 101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보다 5.6%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우울증 환자는 매년 5 내지 9%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고 하는데 특히 20대 환자의 비중과 증가   폭이 연령대별로 볼 때 가장 크다고 하니 이제 우울증은 청춘의 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20대들의 우울증 증상으로는 무기력증이나 대인기피, 식이장애 등이 많다고 한다. 문제는 우울증을 앓아도 진료를 받는 비율이 22%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로 말미암은 사회 분위기와 취업난 같은 환경적 요인이 클 것이다.
  최근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여자가 만나주지 않자 3개월 동안이나 스토킹을 하면서 그 피해 여성의 집에 찾아가 일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스토킹은 피해자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야기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주는 범죄이다.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는 물론이고 주거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도 당연히 스토킹에 포함된다. 지난달 24일에는「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오는 9월부터 시행된다. 법에 따르면 상대방이 거부하는데도 계속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며 불안감·공포심을 일으키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흉기 등을 휴대하면 5년 이하 징역·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형량이 늘어난다. 교육부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스토킹 피해를 당했다는 학생들의 응답이 10.6%에 이른다. 최근에는 SNS를 이용한 스토킹 폭력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우울증은 제때 치료하면 증세가 훨씬 호전된다고 한다. 인본주의의 의미를 되살펴 근대화의 부작용과 역기능이 더 이상 초래되지 않게끔 하는 것도 중요하고, 4월도 더 이상 잔인한 달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올해 유독 대학의 위기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대학은 진리의 상징이라는 지위를 가지면서도 산업 발전의 기초 기능을 지금껏 잘 수행해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 있는 교육 현장으로서의 역할을 여전히 맡아내고 있다. 우리 대학인들도 서로를 존중하며 보듬는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세를 가질 때 이 시간들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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