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손가락의 힘을 믿는다

엄수지 기자,  사회학과

  지난달 27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 대회 연설 무대에 흰색 의상 차림의 미스 미얀마 한 레이가 올랐다. 무대에 오른 한 레이는 “세계 모든 사람은 조국의 번영과 평화를 원하며 지도자들은 권력과 이기심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내가 이 무대에 서는 동안, 조국 미얀마에서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목숨을 잃은 모든 시민을 깊이 애도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 레이는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원한다”며 “미얀마를 제발 도와달라, 우리는 지금 당장 긴급한 국제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간청했다. 한 레이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 ‘힐 더 월드’(Heal the World) 한 소절을 부르며 연설을 마쳤다. 한 레이는 현지 언론과 만나 안전에 대한 우려로 당분간 태국에 머무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53년 만에 군부 독재에서 벗어난 미얀마 민주화의 꿈은 5년 만에 무너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얀마 군부가 지난 총선 결과에 불만을 품고 지난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1년간 국가 비상상태를 선포했고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이 전권을 거머쥐었다. 군부는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 산 수치 국가 고문과 윈 민 대통령을 포함한 미얀마 정부 핵심 인사들을 납치, 수도 네피도에 구금했다.
  지난 2015년 11월, 수치 국가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하 NLD)은 25년 만에 열린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수치 국가 고문은 민주 정권 시대를 열었지만, 미얀마 군부도 계속해서 힘을 유지하며 갈등을 벌여왔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NLD는 단독정부 구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군부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특정 상황에서는 헌법이 폐지될 수 있다”고 쿠데타 가능성을 암시했다. 결국 군부는 의회 개회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문민정부를 전복시켰다.
  국제사회는 미얀마 쿠데타를 규탄했다. 미국 국무부는 미얀마 군부의 정권 장악을 쿠데타로 규정하고 대외 원조 중단과 인적 제재를 무기로 압박에 나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국제연합) 사무총장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얀마 의회 개회를 하루 앞두고 발생한 아웅 산 수치 국가 고문과 윈 민 대통령, 다른 정치 지도자들의 구금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얀마 사태 논의를 위해 열린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비판 성명 채택은 무산됐다.
  미얀마 국민들은 힘들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는 “군부 독재 패배, 민주주의 승리”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고 수치 고문 등 구금된 인사 석방을 요구했다. 외신이 전한 영상에서 시위대는 빨간색 머리띠와 깃발을 흔들고 세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들며 거리를 행진한다. 붉은색은 수치 고문이 이끄는 NLD를 상징하는 색이다. 세 손가락은 민주주의·선거·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2014년 태국의 민주화 시위를 통해 저항의 상징이 된 제스처다.
  지금은 먼 나라 얘기 같지만 겨우 3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은 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오랜 시간 동안 국민들은 민주화를 요구했고, 모진 탄압에도 민주화 운동은 이어졌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독재는 특정 몇몇 이익을 위해 독단으로 행하는 비정상적인 정치 형태이다. 독재가 시작되면 그 특정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인권을 상실당한 채 살아가게 된다. 독재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얀마 국민들은 그 어려운 일을 53년 만에 이룬 적 있는 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민주주의를 향해 달려 나가기를, 그리고 그 어떤 생명체도 독재에 의해 희생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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