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손미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밤을 두드린다. 나무 문이 삐걱댔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다. 가축을 깨무는 이빨을 자판처럼 박으며 나는 쓰고 있었다. 먹고사는 것에 대해 이 장례가 끝나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뼛가루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나왔는데 식도에 호스를 꽂지 않아 사람이 죽었는데 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어도 될까. 사람은 껍질이 되었다. 헝겊이 되었다. 연기가 되었다. 비명이 되었다 다시 사람이 되는 비극. 다시 사람이 되는 것. 다시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까. 케이크에 초를 꽂아도 될까. 너를 사랑해도 될까. 외로워서 못 살겠다 말하던 그 사람이 죽었는데 안 울어도 될까. 상복을 입고 너의 침대에 엎드려 있을 때 밤을 두드리는 건 내 손톱을 먹고 자란 짐승. 사람이 죽었는데 변기에 앉고 방을 닦으면서 다시 사람이 될까 무서워. 그런 고백을 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계속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묻는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무 문을 두드리는 울음을 모른 척해도 될까.

 

 글을 시작하기 전에 질문을 하나 던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의 제목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그리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이 과연 어떤 것인지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첫 문장부터 죽음이 나옵니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죽는다는 건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그 죽음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습니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 매체 속 유명한 사람,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의 죽음까지. 누군가가 죽었다고 하면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고도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또 계속 살기 위해 죽음을 쉽사리 곁에 두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으로 산다는 것도 결국에는 죽음과 연관돼 있고 죽음을 곁에 두는 일입니다. 우리는 잘 죽고 잘 살려고 합니다. 지금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 삶은 언제나 죽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누군가의 절멸에서 내가 나왔다는 것, 내가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시인은 이야기합니다. 꺼져 가는 다른 이의 생명 속에서 나온 나, 그 죽음을 모른 척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나는 다시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사람은 살아있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그 아픔을 지니고도 다시 사람일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고통과 삶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슬프고도 훌륭한 일인 것 같습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제가 던진 질문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시의 제목에서 시인이 이미 사람을 사랑하고 있으면서, 확신을 얻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누군가가 죽었는데 그 죽음을 뒤로하고 다시 사랑해도 되는지 묻는 시인의 모습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과연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무엇이며 유한한 존재인 사람을 우리는 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사랑은 사람이 지닌 가장 위대하고 용기 있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세상과 자연에 있어 한없이 부족하고 약한 사람이,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해 이 삶을 잘 살아내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학우 분들이 되길 바라며 3월 2일의 글을 마칩니다.

박시현(국어국문학·3)
@garnetstar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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