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스토어 광교의 리필 스테이션 사진/ 아모레퍼시픽 제공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는 단어 그대로 쓰레기를 최대한 줄여 환경 부담을 더는 운동이다. 제로 웨이스트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건 비 존슨의 책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출판 이후다. 미국의 평범한 주부인 비 존슨은 일 년에 쓰레기를 단 한 병만 배출하는 생활을 책으로 써냈고, 이후 비 존슨의 5R 운동은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5R 운동은 Refuse(거절하기), Reduce(줄이기), Reuse(재사용하기), Recycle(재활용하기), Rot(썩히기)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기존에 갖고 있던 물건을 활용한다는 의미다.
  국내에서 제로 웨이스트가 시작된 건 2018년 쓰레기 대란 이후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분리수거 모범국인 우리나라는 이전까진 일회용품을 위험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8년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재활용품 판매 이익보다 수거 비용이 커지자 재활용 업체들이 잇달아 수거 거부를 선언했다. 내놓으면 사라지던 일회용품이 한순간에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우리 사회는 비로소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
  일회용품 중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건 단연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가벼운 무게와 내구성, 편리한 가공으로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흔히 생각하는 PET뿐만 아니라 비닐, 실리콘, 스티로폼 게다가 우유 팩을 코팅하는 폴리에틸렌까지 모두 플라스틱이다. 제로 웨이스트는 사실상 ‘플라스틱 프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일회용품으로 소비되는 플라스틱의 수명은 500년에 달한다. 19세기에 세계 최초로 등장한 플라스틱도 아직까지 분해되지 못한 셈이다.

  우리 식탁 위의 플라스틱,

  버려진 플라스틱은 외부 마찰로 작게 쪼개진다. 이러한 플라스틱은 바다로 흘러가 어마어마한 양의 해양 쓰레기로 변해 한반도 7배 크기의 섬까지 형성했다. 문제는 이런 플라스틱을 바다 생물이 먹으면서 먹이사슬로 편입됐다는 것이다. 태평양에 사는 바닷새 앨버트로스는 먹이로 착각한 플라스틱을 새끼들에게 먹여준다. 이러한 플라스틱 조각은 새끼들의 내장을 파괴하는 데다가, 무겁기까지 해 새들이 날지 못한다. 바다로 가야 먹이를 구할 수 있는데 날지 못하니 결국 죽음에 이른다. 웰 맥컬럼의 『플라스틱 없는 삶』에 따르면 바닷새 중 90% 이상의 소화기관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러나 플라스틱을 먹는 건 바닷새만의 일이 아니다. 세계자연기금과 호주 뉴캐슬대학교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매주 평균 신용카드 1장 무게의 미세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 어느새 플라스틱이 우리 식탁에도 올라온 것이다. 미세 플라스틱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먹이 사슬의 끝자락에 있는 인간이 이를 먹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미세 플라스틱은 토양에도 퍼져있다. 방치된 쓰레기 산의 미세 플라스틱이 빗물을 타고 흘러가 논과 밭에 흡수된다. 지난 4년 동안 확인된 전국의 쓰레기 산은 320여 곳이 넘는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까지 모두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것이다.

플라스틱 다이어트 홍보물 환경부에서 제안한 캠페인이다. 사진/ 환경부 제공

  플라스틱의 유해성
  뜨거운 물을 플라스틱 텀블러에 담으면 안 된다는 건 어느새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플라스틱에서는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이는 말 그대로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물질이다. 우리 몸은 이를 몸에서 생성한 호르몬과 착각해 다양한 반응을 만들어낸다.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 ‘환경 호르몬’으로 불리는 이유다. 내분비계는 신경과 면역 체계와 더불어 성장, 발달 그리고 항상성 유지를 위한 조절 기능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생명체에게 매우 중요하다. 환경 호르몬은 성조숙증, ADHD, 자궁내막증, 정자 수 감소 및 활동성 저하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비스페놀A, 다이옥신, 프탈레이트 등이 대표적인 환경 호르몬이다. 이 중 다이옥신은 플라스틱을 태우면 발생하는 유해물질로 암과 같은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환경 호르몬은 오랜 시간 걸쳐 작용하는 데다가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뜨거운 물질과 만나지 않아도 검출되기 때문에 그 위험성은 더욱 밝혀질 예정이다.

  재활용되지 않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쉽고 다양하게 가공할 수 있어 주목받았다. 그러나 재활용은 더 어려워졌다. 같은 플라스틱이더라도 가공 방식에 따라 재활용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PVC는 PET와 녹는점이 달라 기계에 섞여 들어가면 재활용이 안 될 뿐 아니라 기계를 망가뜨린다. 고금숙의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종류는 약 70종으로 이 중 재활용 선별장에서 걸러지는 10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버려진다고 한다. 우리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대전시 유성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수거된 재활용품 중 선별된 비율은 65%에 불과하다.

  코로나19로 시작된 쓰레기 대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제2의 쓰레기 대란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소비자는 방역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자 일회용품 사용에 관대해졌다. 특히 카페에서 다회용 머그잔을 사용하도록 했던 환경부 지침이 일시 정지되면서 플라스틱 사용이 폭등했다. 게다가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스티로폼 포장재, 일회용 배달 용기 등의 사용도 급격하게 늘었다. 이제 생필품이 된 마스크는 국내 생산량만 일주일에 2억 장이 넘는다. 대전시 유성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하루 재활용 수거량은 30.1t이었지만, 올해는 33.4t으로 약 10%가량 증가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국제 정세도 쓰레기 대란에 한몫 거들고 있다. 유가가 폭락하면서 새 플라스틱의 가격이 덩달아 하락하자 폐플라스틱을 살 필요가 사라졌다. 게다가 수출길까지 막혀 폐플라스틱 수거는 오히려 손해라는 게 재활용 업계의 의견이다. 수거비용, 분류 작업 인건비까지 생각하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고자 지난 4월 환경부는 폐플라스틱 공공비축을 시작했다. 또한 아파트와 수거업체의 계약대금에 재활용 품목의 시세를 반영하는 가격연동제를 적용해 재활용 업계의 부담을 줄였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효과를 체감하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도 단기적인 해결책이 아닌 자원순환 구조의 근본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제로 웨이스트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지만, 사회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소비자도 있다. 특히 이들은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친환경 라이프를 알릴 뿐 아니라 각종 사회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플로깅이란?
  플로깅은 이삭을 줍는다는 뜻인 스웨덴어 plocka upp과 조깅의 합성어로,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명 ‘줍깅’으로 불린다. 플로깅은 길가의 쓰레기를 주워 환경을 미화하는 효과도 있지만, 해양으로 흘러갈 쓰레기를 재활용 선별장으로 보낸다는 것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플로깅은 봉투와 장갑을 챙겨 나가 바로 시작할 수 있어 SNS에서도 인증샷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또한 러닝크루와 같이 여러 사람이 모여 하는 형태로도 발전하고 있다. 게다가 쓰레기를 주우며 반복적으로 일어났다가 앉아야 하므로 운동 효과도 일반 조깅보다 더 크다.

  플라스틱은 거절합니다
  ‘용기내챌린지’는 다회용 용기를 챙겨 일회용 포장재 사용을 줄이는 것을 독려하는 챌린지다. 장바구니를 소지해 일회용 비닐을 받지 않는다거나, 반찬통을 챙겨가 음식을 포장해오는 식이다. 용기내챌린지는 일정 기간만 운영하는 단기성 챌린지가 아닌, 부끄러움 없이 일회용 포장재를 거절할 수 있는 용기(勇氣)를 독려하는 운동이다.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SNS에 ‘#용기내챌린지’는 늘어나고 있다. 
  이와 달리 기업에 즉각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캠페인도 있다. 소비자 단체 쓰담쓰담이 주도한 반납캠페인은 불필요한 일회용품을 기업에 반납하고 이를 제품에도 반영하도록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캠페인이다. ‘스팸 뚜껑은 반납합니다’ 캠페인은 스팸의 노란 뚜껑이 전혀 필요가 없다는 점을 고발하며 이를 모아 CJ제일제당 측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CJ제일제당은 추석 선물 세트부터 노란 뚜껑이 없는 스팸을 출시했다. 이처럼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제로 웨이스트는 SNS의 저력을 보여주며 확산하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 샵의 등장
  윤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에 발맞춰 유통가에도 변화가 생겼다. 바로 제로 웨이스트 샵이다. 제로 웨이스트 샵은 고체 치약, 설거지 비누 등 친환경 제로 웨이스트 물품을 판매하는 가게뿐만 아니라 제로 플라스틱 카페, 리필 스테이션을 포함한 개념이다. 리필 스테이션은 세제나 화장품 등을 살균 소독한 병에 그램 단위로 파는 형태로, 소비자가 가져온 병에 판매해 ‘리필’이라는 용어가 붙었다. 이는 불필요한 포장재 사용을 줄이고 필요한 만큼만 구매할 수 있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들도 점차 이를 시도하는 분위기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로 리필 스테이션을 시작했다. 샴푸와 바디워시 품목으로 제한됐지만, 기존 가격보다 50% 할인을 받을 수 있고, 시대적 요구에 응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마트 또한 국내 대형마트 최초로 세제를 리필 판매하는 에코 리필 스테이션을 설치했으며 이를 점차 확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마트의 계획대로 8개 지점에서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할 경우, 한 해 약 8,760kg의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기업으로 확대되는 제로 웨이스트

  기업들도 점차 제로웨이스트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포장재 변화가 대표적이다. 포장을 최소화하고, 플라스틱 대신 종이로 만든 완충제 및 테이프 등을 사용하는 것이다. 마켓컬리는 All paper challenge를 진행해 모든 배송 포장재를 종이로 바꿨다. 또한 동원F&B는 충격완화를 위한 플라스틱 포장재를 뺀 양반김 에코패키지를 출시했다.
  상대적으로 플라스틱을 많이 쓰는 카페, 패스트푸드와 같은 식음료 기업에도 환경친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맥도널드는 2025년까지 모든 포장재를 재생 가능한 원자재 혹은 재활용되거나 인증받은 원자재를 사용한 포장재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또한 플라스틱 빨대 없이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음료뚜껑을 도입했다. 스타벅스도 이와 같은 음료 뚜껑과 종이 빨대를 도입해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했다.

  정부의 노력
  환경부는 지난 8일 음료 제품에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부착을 금지하는 내용의 「제품의 포장 재질, 포장 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포장재의 재활용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이를 제재한다는 방침이다. 환경부는 입법 예고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해양수산부는 해양 쓰레기 절감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외에도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비닐봉지 유료화, 다음 달부터 재개하는 매장 내 일회용 컵 금지와 같은 정책도 제로 웨이스트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인식 제고를 위한 각종 홍보물을 제작해 배포하고, 지자체에서 플로깅 이벤트와 같은 행사를 주최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도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전파되고 있지만, 배달음식, 카페 테이크아웃 등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세대도 2030이다. 우리 학교의 실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황준규 교육공무직노동조합 조정국장은 “우리 학교는 사실상 분리수거가 잘 안 되고 있다”고 밝혔다. 황 조정국장은 “특히 내용물이 담긴 일회용 컵을 그냥 버려 분리수거가 가능한데도 잡쓰레기로 분류해야 할 때가 많다”며 “모두가 교정을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씩 변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 조정국장의 말처럼 이제는 우리가 바뀌어야 할 때다. 건강한 미래를 위해 조금은 불편하지만 뿌듯함을 안겨주는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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