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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회 충대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
충대신문 | 승인 2020.12.04 15:10|(1165호)

애월

 

  당신은 다시 바다로 갔다. 이른 바다에 도착해 모래사장부터 걷기 시작할 것이다. 아니면 당신만 아는 산책로를 걸을 수도 있겠다. 이른 바다는 추웠다. 날은 매섭게 맑은데 바람이 내쫓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은 드물고 왜 이곳에 왔을까 싶은 눈치를 보는 조개구이 사장들이 당신을 바라본다. 잘해준다고, 이 가게는 특별하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은 여유롭게 말을 흘러 넘긴다. 당신은 아는 사람의 가게나 아는 사람의 집을 알고 있다.
아마 자식이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 봤던 점을 당신은 잊지 못한다. 그 점쟁이는 당신이 물을 떨구지 못한다고 했다. 태어나기를 바다에서 태어났다는 거짓말을 했다. 부산이라고 했지만, 성정이 그렇다고 혼이 났다. 그리고 부산도 바다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러려니 넘어가고 싶었다. 많은 사랑을 받아서 벗어날 수 없다는 행복에 겨운 소리였다. 어떤 의도이든 다시 바다로 왔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 당신은 자주 그 말을 떠올렸다. 할머니를 닮았다는 꾸밈도 없는 소리였다.
  그 날 이후 몸에 새겨진 것처럼 말이 잊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몇 주를 지낸 여름 방학의 섬 생활처럼. 당신은 모든 것들을 이어서 생각했다. 외국의 어떤 바다를 가서 운 좋게 사랑하는 사람과 걷게 된 장소처럼 말이다. 혹은 기차를 타고도 갈 수 있는 바다를 가서도 그 말을 떠올렸다. 자신의 사투리처럼 다리를 저는 사람을 보며 다리를 저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겠다. 혼자 이곳에 온 이유를 생각하며 운명론을 떠올렸을 것이다. 바다와 당신의 운명, 파도가 땅에 닿는 운명, 모래가 얇아지는 운명.
  바다는 밝거나 혹은 흐렸을 것이다. 바다와 바다가 이어지고 가끔은 섬과 섬이 이어졌을 것이다. 사시사철의 계절은 그렇게 옳거나 틀리지 않지만, 부정할 수 없는 뭔가 있었다. 새로운 계절임에도 같은 감정을 느낀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당신의 자녀 혹은 당신은 남길 말을 마음에 적고 있었다. 그러나 자꾸 오고 가는 바다가 마음을 지우고 있었다. 자꾸만 보게 될 현대식 문물이 생각을 가져가는 게 싫어서 꺼 놓았다. 당신은 그곳 대신에 말을 두고 있었다.
  바다의 모래는 항상 고왔다. 살결처럼 스치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당신은 적당히 앉을 곳을 찾았다. 파도의 소리를 들었고, 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파도와 바람의 관계는 알아도 그 소리가 같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당신이 바람이었더라면 더 자유롭게, 저기 미국까지는 닿을 것이다. 당신이 파도였다면 이제 만난 땅을 사랑한다며 꽉 끌어안을 것이다. 어렴풋이 추워진 계절을 느낄 때면, 숙소가 떠오를 것이다. 다시 도로로 나와 다니지 않는 차도를 바다의 결과 같이 걸었다. 당신은 숙소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길을 물어서 갈 수 있고 찾아서 갈 수 있다. 기분이 이상할 것이다. 당신은 집이 있었지만, 자주 먼 바다를 찾아왔다. 바다 빛을 눈에 담고 해풍을 머릿결에 스쳤다. 종종 자신을 충전기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주팔자가 그렇기를 결국 물을 떼어 놓을 수 없다고 했다. 아니다 다를까 역시 무당과 같은 사람의 말이었다. “해녀 말씀인가요?” 그자는 우습게 무릎을 치며 뭔가를 말했다. 자기만 아는 말로, 인연이라는 설명이었다. 물론 고향은 바다였다. 당신과 다르게 할머니에게 익숙해진 사투리로 말을 했었다. 아마 당신은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곳에 다시 오게 되었다고. 할머니, 어머니, 엄마, 여자, 사람 그런 흐름으로 피가 이어졌거나 누구를 닮았거나, 혹은 사주가 그렇게 되어서 말이다. 당신은 제주도에서 살 생각을 했다. 바다라니까 자연스럽게 이해한 과정이었다. 소라에게 바다의 소리가 있던 것처럼, 마음에 바다의 풍경이 남아 있었다. 혹은 영혼이 이곳에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이미 죽을 뻔한 경험도 있었다. 해루질을 하는 사람들이 흔하진 않지만, 할머니의 친구를 만나러 갔다. 당신은 바다가 좋았다. 맑았고, 밝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당신은 모래가 조개의 껍질 조각으로 만들어졌다는 커다란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 움큼 쥐어서 주머니에 넣곤 했다. 그러고는 그냥 바다에 떠있을 뿐이었다. 멀리 떠다니는 해초처럼, 당신은 해달이나 수달처럼 떠다닐 수 있다고 믿었다. 귀에 말이 잠기고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가 말았다. 파도가 이따금씩 괜히 코로 들어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당신은 코를 쥐고 입으로 숨을 쉬었다. 바닷물은 짰지만 코로 들어가는 것보다 나았기 떄문이었다.
  꼬르륵거리고 나면 소리들은 금방 가라앉았다. 당신이 쉬는 숨과 뱉는 숨만이 들릴 뿐이다. 당신이 심장을 삼키면 드디어 그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집중한 나머지 멀리서 사람들이 소리치는 고함도 듣지 못했다. 사람들은 당신이 죽은 줄 알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장난도 아니었는데, 장난처럼 받아들여졌다. 영문도 모르는 당신은 울었다. 파도에 뒤집어진 주머니에서는 모래가 잔뜩 나왔다. 저 바다의 바닥, 그 어딘가로 끌려갔다 나온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그때 무슨 말을 많이도 들었다. 사랑이 사람의 눈을 부시게 만드는 것처럼 어른들이 바다를 무서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바다는 흐름이다. 물이 차고 나가는 영원의 흐름, 달이 뜨고 지는 시간의 흐름, 누군가 오고 가는 인연의 흐름. 썰물이든 밀물이든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것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었다. 당신은 그 비밀을 알았다. 바다는 흐름이라는 것이었다. 당신은 괜찮지만 되지 않는 사랑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흐름이라고 믿었다. 어쩔 수 없이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어수룩했다. 결국 마음을 놓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당신과 같이 살아온 궤적에 이끌려 온다. 이번엔 당신의 비밀을 알게 된 날이었다.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다시 바다에 온 것이다. 오래 누워 있으면 허리가 펴지는 것처럼 모래가 고르게 퍼졌다. 당신은 가끔 파도가 손결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남은 자국이 있더라면, 저 구석에 쌓인 모래처럼 긴 하나의 원형이 박혀 있을 것이다. 갑자기 갈매기가 퍼져 날아올랐다. 그리고 당신의 앞쪽에, 바다가 들어올 수 없는 곳에 착지했다.
  사람들이 물러날 때도 갈매기는 가만히 있었다. 그들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라봤다. 2층의 숙소에 머무를 때면 그들이 이 바다를 상징하는 조각물인 줄 알았다. 가로등 위에 가만히 균형을 맞춰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바다의 숙소든 혼자를 위한 방은 없다. 어쨌든 과하게 사치스러운 공간을 누려야 하는 것이다. 언제부터 바다는 혼자 오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어쩌다로 시작되는 문장을 몇 번 들었던 것 같았다. 낮에는 어쩌다 사진을 몇 번 찍었다. 무심코 차마 담을 수 없는 것들을 남겨야 한다는 기분이었다. 밤에는 어쩌다 술을 마셨다. 그런 기분이었다.
  언젠가 바다 같은 시간이었다. 애매한 오후는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뛰는 소리가 들렸고, 대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시간과 같았다. 봄, 그때는 봄이었다. 열어 둔 창문으로 바람이 천천히 불었다. 커튼이 옅은 주황빛을 받으며 흔들렸다. “아이는 몇 명이 좋아” “입양하자. 두 명이면 좋을 것 같아” 사소한 손결로 툭 건드리는 몸, 별 의미 없이 하는 얘기들, 그 모든 것들이 눈부시게 현상된 장면이었다. 몸으로 느끼는 체온은 분명 같은데, 더 따스하게 물들었다. 기적적으로 몸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끔씩 사무칠 때면 베개를 끌어안았다. 모든 게 몸에 남은 모래 같았다. 몸에 남은 자국, 기억에 남은 자국이었다. 아직도 자신이 숨을 뱉으면 그 커튼처럼 옷이 흐느끼는 것 같았다. 행복해서 슬퍼 행복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아니지만 한 기억 뒤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게 있었다. 마치 기억의 최종 흑막처럼 나타났다. 여러 기억들은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남아있을 습관이었다. 단계처럼 이어진다면 그 뒤로는 외국의 바가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여성은 엉성한 사투리로 나오는 영어 발음이 귀엽다고 했었다. 충분한 얘기와 술은 관계를 빠르게 진전시켰다. 무례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먼저 가는 당신을 아쉽다며 볼키스를 해줬다. 단번에도 그게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았다. 당신은 가볍게 그녀의 손에 키스를 하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가족을 몰래 나온 당신이었기에 물러난다.
  기억을 정리했다. 항상 했던 일들이지만, 덤덤하게 쌓인 감정들을 모래처럼 덜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자세하게 자신이 뭘 하고 있는 줄 모른다. 정말 운명처럼 시간이 나서 찾아온 바다에 가만히 있으며 그곳을 바라보기만 하기 때문이다. 바다의 모래 입자가 작은 것처럼 닳아버린 기억을 만진다. 습관으로 너무 오래 만졌다. 코를 몇 번 훌쩍이다가 오랜 이름이 떠오른다. 첫 자식이 생긴다면 짓겠다던 이름이었다. 여전히 좋은 울림이라고 생각한다. 엉뚱하게 남들에게 떠밀려 사랑했던 첫사람과 진정이라고 말했던 첫사랑을 떠올린다. 부드러운 솜사탕이 녹지 않고 구름처럼 만질 수 없다면, 그리고 그것이 모여 구슬처럼 단단해 진다면 그런 울림일 것이다. 눈을 감는다. 당신은 숙소로 돌아간다. 당신은 눈을 감는다.
  몇 번이든 낯 뜨겁게 사랑한다는 말을 돌려서 말하겠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똑 같은 지 생각했다. 심지어 모습도 비슷해서 철렁거렸다. 남사스럽다는 말이 나오겠지만, 얼굴이 금세 붉어지는 당신을 보며 참지 못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거창한 비유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말버릇이 상대의 몸을 어루만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당신은 붉게 타는 석양처럼 진부한 색을 좋아했다. 전혀 숨김없이 부끄럽게만 타는 저녁처럼, 많은 사랑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당신은 일기를 적었고 그러니 바다를 왔다. 오겠다고 말했고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무당에게 점 값을 더 쳐줄 것을 그랬나보다.

  “뭐해?”
  “아, 그냥”
  당신은 모르겠지만, 습관처럼 방어적인 말을 했다. 사실 한참 전부터 당신을 보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사람들을 보는 멍한 표정과 살짝 감길 때 드러나는 눈썹을 보고 있는 것은 비밀이다. 이렇게 보면 바다가 눈을 감는 것 같았다. 유난이 흰 눈썹이 드러나게, 당신은 슬프지도 않게 눈을 감는 것 같다. 커다란 비밀이 저녁이면 갇히게 되겠지만 흰 파도는 볼 수 있었다. 당신이 눈을 감을 때면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음 속에서 나지막하게 바다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당신은 눈에 기록을 담았다. 흰 파도가 모래사장에 닿는 것처럼, 모래 사장의 모래가 날아오는 것처럼, 날아온 모래가 신발 틈에 껴 있는 것처럼.
  사진을 현상하듯 모든 것을 천천히 담았다. 아무리 늙어도 시간이 깃드는 일은 충분히 보람찬 일이었다. 당신은 문득 함께 늙어가는 일을 항상 누군가와 한 바다가 부러워졌다. 많은 것들이 산산이 부숴지겠지만, 사라지지 않고 어디로 녹아 들어 갈 것이다. 당신은 사랑의 유물이라는 것을 잘 알았고, 결과이자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비밀이었다. 당신은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늙어도 사라지지 않으며, 죽어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충분히 늙어버렸어도, 아직은 젊어버렸어도 이어진 흐름에 따라 이곳에 왔다. 언제 왔는지, 또 언제 갈 것인지 설명할 수 없겠지만 당신은 다시 바다로 갔다.
아마 책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 편지를 쓰다 말고, 좋은 문장을 쓰고 싶어서 훑고 있었다. 2층의 책상은 창문을 바로 마주하고 있었고, 이따금 가을이 되면 바람과 함께 붉은 낙엽이 들어왔다. 지금도 애매한 주황잎이 들어왔다. 다른 나라에 오기라도 했는지, 벌써 가을이었다. 편지지가 넘어가지 않도록 올려놓은 펜이 스륵 굴렀다. 당신은 책을 두고 바깥을 바라본다. 누군가 들렸다 갔다는 말이 기억났다. 느낌은 영어가 어울리는 동네였지만, 한국의 시가 떠올랐다. 낙엽을 아기 손이라 했던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들리는 소리는 바다가 찰랑이는 소리와 같았다. 결과 결이 맞대면 나는 소리가 있었다. 파동과 파동이 만나 겹치는 것처럼 퍼지는 상태였다. 파도가 웬일로 인사를 하러 왔다. 노을이 나무를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나무가 조금 이르게 나이를 먹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과 시간이 맞부딪히는 소리였다. 당신은 일 때문에 맞지 않는 지역에 와버렸다. 이 이국적인 상태에 있었음에도 어딘가 와봤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전에 왔던 곳과는 달랐다. 당신은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영혼에 새겨진 것처럼 습관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한숨을 쉬거나, 혼잣말이 익숙해진 것이다.
  이국적인 친구들은 당신을 좋아했다. 술을 마시면 하필 볼만 붉어졌고, 가까이 와야 보이는 주근깨를 귀여워했다. 당신은 평소의 말투대로 영어를 읊었다. 그제야 이상한 점을 느꼈다. 잠시 지냈던 동안 할머니에게 익힌 사투리가 베어 있었다. 고작 몇 주였는데 할머니의 사투리를 경상도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당신의 몸에 새겨진 바다의 빛이 떠올랐다. 눈이 부신 것처럼 손길이 느껴졌다. 당신은 할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것을 기억했다. 어쩌면 주름들이 스치고 깃들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조금은 같이 늙을 수 있었을까
  어딘가를 가면 편지를 썼다. 그곳에서 파는 엽서에, 때로는 준비해둔 편지지에 썼다. 누군가를 위하면서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썼다. 당신과 함께 늙지 못한 일이 아쉬워서 쓴 말들이었다. 당신에게 바다는 종종 있는 곳이었다. 저런 소리가 비슷한 흐름으로 흘렀다면 그런 줄 알고 있었다. 무심코 들려본 구석진 바에서 천천히 잔을 들이켜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소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까이 들여 봐야만 깊은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당신은 어떤 기억이 난다. 가정적인 당신과는 다르게 상대방은 고양이 같았다. 날카롭고 예민하지만 자기 맘대로 거리를 허락했다 마는 것이다. 자신의 웃음을, 미소를 아는 일은 사랑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랑을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은 끝까지 웃지 않았지만, 마지막의 술잔을 대신 계산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계절에 기억이 남는 것처럼 행동에도 사람의 향기가 남는다고 알게 된 날이었다.
  숙소에 들어왔지만, 주인장은 이상하게 당신을 바라봤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기어이 확인을 해야 했다. 사람들은 말을 듣고도 다시 반복한다. 동의어를 듣길 바라는 게 아니다. 다른 문장으로 그것을 재확인 시켜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씁쓸한 술을 마시며 그런 중의 취향을 찾아냈다. 어릴 때 쓴 음료를 마시며 금세 얼굴이 붉어진 당신을 본 아버지가 칼칼거렸다. 왜 이런 것들을 마시나 싶었던 그때, 이제는 취향을 골라 적당한 피로를 안아야 했다. 당연히 사랑을 하며 상처를 받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당신은 사랑을 선택했다.
  사랑의 슬픔은 끝에서 끝으로 이어진다. 당신은 외롭지 않았다. 누구의 빈자리조차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느껴지는 이 부속품이 모래처럼 흔들렸다. 당신의 마음은 파편으로 나뉘어 다시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일부는 마음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당신에게 보낼 것이다. 갯벌도 모래였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바위가, 흙이 모래가 된 것처럼 유실되어도 어딘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다처럼 균형이 맞춰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계절을 지나 온다면 흔히 말하는 그것이 성장일 것이다.
  당신은 마음속으로 어떤 서사를 이어가고 있다. 막 지어낸 말이 아니었고, 혼잣말도 아니었다. 항상 하던 기억과 이어지는 습관처럼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글에도 적혀 있었고, 이 바다에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서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야!” 네가 말했지 그때 그 말은 어떻게든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었을 거야. 너는 그렇게 방문을 닫았고 나는 생각했어. 만약 우리가 미래나 지금을 알고 과거나 지금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럴까? 더 나은 지금이나 미래가 올 수 있을까? 이를테면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다시 현재의 나에게 말을 해주는 거야. 최고의 최상의 결정을 찾으면서 바뀌는 결과를 만들려고 하는 거야.
  송신은 그래, 파도가 좋겠어. 서로 알게 될 바다에 일정한 주파수의 파도를 울리는 거야. 날이 흐릴 땐 그 결정이 별로였다고, 날이 좋을 땐 그 결정이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는 거야. 겨울은 또 다르고, 여름도 다를 거야. 아직은 모르지만 내가 그때가 되면 알겠지. 그런데 이미 너는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너의 표정이 벌써 바다를 보고 있으니까. 봐봐, 네 사랑은 이미 바다를 거치고 있잖니.
  기억은 단순하게 뇌가 저장해두는 생각인 줄만 알았는데. 기억이 소리와 시각 심지어 냄새까지 겹쳐져 있었어. 나는 너를 기억하게 되었어. 있잖아, 사람의 숨은 지구를 돈 대. 반 바퀴, 한 바퀴, 이 세상에 깃든 대.

  테라스의 창을 열자, 조금 짠 내가 들어왔다. 기분 나쁘지 않게 시원했다. 그리고 조금 늦게 바다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있던 당신은 웃음이 났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바다에 들어 갔었다. 당신은 발목도 닿기 전에 도망쳤다. 기억과 기억, 최초로 잊어버린 기억을 찾아갔다. 우연히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어릴 적 예쁘장한 여자 아이를 훔쳐봤던 기분이 들었다. 수줍고 무심코 발견한 자신의 기분이 나빴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의 기억은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그런 기분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을 지나면서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싶은 아림도 있었다. 늘 열심히 사랑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날은 유독 흐린 바다였다. 그래서 사랑이라고 적지 않는 사랑의 말들을 적어봤다. 대부분 뭐라도 닮았다고 썼다. 이따금씩 너무 당연한 삶의 진리는 그 말로도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구름이나 하늘이나, 이만큼, 저만큼 단어를 써야 했다.
  당신은 부모와는 조금 다르고 조부모와 조금 달랐다. 차이가 있다면 늙어가는 결에 우연히 맞닿았다는 것이다. 그 간극은 운 좋게 볼 수 있는 바다의 석양 같았다. 붉노란 노을이 푸른 숲을 물들이는 이른 가을 같았다. 종이를 넘길 때 나는 작은 파도의 소리 같았다. 그래서 문득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 내 자식이 이것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글씨체가 엉망이지만, 그것을 해독하며 진지하게 바라봤으면 좋았겠다. 그때가 되면 짠 내에 길들여진 종이가 울 수도 있었다. 같이 태우면, 사리처럼 소금이 나올 수도 있었다. 어쨌든 바다를 다시 찾아오게 되었을 것이다. 분명 그 마지막에는 끝의 어딘가를 적었을 것이니까. 그곳에 돌아가기를 바랄테니까. 당신은 다시 바다로 왔다. 받아 적을 말들이 있었다.
  당신은 자신이 인어의 후손일까 생각도 했었다. 친구들에게 말해본 결과도 다양했다. 외국에 나가서 죽어버린 인어공주를 회로 먹었던 우리 조상이 그 피를 타고나 그것이 지금 당신이 되었다는 이야기. 심청이가 다시 육지로 올라 결혼한 그 피가 타고 났다는 이야기. 그러나 고향이 그렇기를 된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가족 그 누구도 관련된 사주나 팔자도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드러날 수 있냐는 말에 무당은 헛기침을 했다.
  그런 아침을 일어날 것이다. 옆을 확인하고, 커튼을 잠그는 아침.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아침. 정말 당신이 밀리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꿈을 꿨다. 커피는 써서 마실 수 없었다. “그러면 술은?” “술은 다르니까.” 그 어이없는 표정을 당신은 좋아했다. 이해하는 것보다 너를 알아 챘다는 기분이었다. 팽이를 돌리며, 그 중심점을 바라본다. 별 볼일 없던 것들이 모양을 갖춰간다. 그제야 금기의 말들도 떠오른다. 당신은 문득 중얼거린다. 가족은 아직 내 비밀을 몰라, 그래도 너는 당당하게 소개하고 싶어. 그날은 빠르게 눈이 왔다. 당신은 찬 냄새가 난다며 괜히 안겼다. 나쁘지 않은 추위였다.
  숙소는 추웠고 사람의 온기는 없었다. 아직 외투를 정리하지 않았다. 할 일이 있었다. 기억은 상상이기에, 그것을 쫓는 일이 꽤 힘을 들였어야 했다. 그래서 했던 것을 몇 번이나 훑어봤다. 겨울의 옷을 공손히 정리하는 것처럼 준비를 했다. 아무렇게 집어넣으면 분명 튀어나와 들어가지 않고 버티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기어코 갇히기 싫다며 손을 옷장의 틈으로 넣어 잠기지 않게 할 것이다. 보일러를 켜고 나니 창을 열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다에 있고 싶지만, 추위를 견디진 못했다. 결국 조금 따뜻하게 있다가 나가기로 결심했다.
  본능적인 감각을 따라, 당신은 이곳에 온 운명을 따라갈 것이다. 과거, 아주 조선에 자신과 같은 사랑을 한 사람이 있었을 것 같다. 내 조상이라는 생각을 한다. 당신이 이곳에 온 것처럼 말이다. 그때는 바다라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운명이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연꽃이나 깨진 거울처럼 서로만 알 수 있는 시적인 매개체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혼자 킬킬거렸다. 세상에 두 연인이 바다를 두고 쓴 연서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른 바다에 눈이 부셨다. 깨진 유리처럼 바다가 서로 반짝였다. 당신의 앞에 바다가 많이 쌓여 있었다. 생각해보니 당신은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글을 쓸 때 쉼표대신 띄어쓰기를 두 번 하는 것이었다. 숨이 조금 더 길게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읽기도 그렇게 읽었다. 대신 아이들이 그 습관을 또 물려받았다. 마치 당신처럼 사랑을 길게 읽고, 눈을 길게 읽었다. 만약 연서를 썼더라면, 투명한 편지를 보냈기도 했을 것 같았다.
  바다는 조용했다. 파도는 바다에 속하니 조용하다고 표현하고 싶었다. 파도의 소리는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새근거리며 자는 당신의 숨소리처럼, 사랑한다고 가장 큰 표현을 하게 내버려두고 싶었다. 그래서 길게 쓰고 길게 읽었다. 사랑이라는 말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다. 간지럽히듯 애쓰다 다른 말을 했다. 사각거리는 편지처럼 자신만의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간장게장처럼 뜬금없지는 않아도, 얼굴이 붉어진다고 토마토라는 말을 했겠다. 귀찮은 말들은 건드리지 않아서 소중했다.
  밤도 늦은 바다였다. 고집 때문에 꼭 오래 있었다. 당신은 지난 기억부터 지금까지 많은 것을 올려두고 흩뜨렸다. 파도가 말을 지우고 기억을 보냈다. 멈춰버린 회색처럼 모래알이 고르게 퍼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니 지워지는 말이 들릴 때를 기다려야 했다. 차가 없어서 늘 답답했던 당신은 스쿠터를 타도 좋겠다고 몇 번 말했다. 그것도 혼자 중얼거리듯 사투리로 말을 했다. 이곳이 외국이라면 모르는 차를 잡아타도 좋겠다는 소리를 했다. 어차피 거쳐가는 도로라면, 걸어서도 집에 갈 수 있다고 하겠다.
  잔스럽게 빛나는 별들이 부러웠다. 물에 반사된 별이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바다를 멀리서 보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끌려왔는지 궁금해졌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했겠다고 믿었다. 함께 늙으면 같이 생각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밥을 차리려 소란스러웠을 때 당신은 상을 차리고 반찬을 날랐다. 저시기, 거시기 하는 사투리는 어련히 알게 되었다. 한 번씩 모르고 그 답을 잃다 보니 더 신경 쓰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에 관심을 더 두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사투리가 베어 들었나 보다.
  파도가 당신을 밀어냈다. 이제는 돌아갈 때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얼굴이 사알짝 붉어진 당신은 등을 돌렸다. 사랑하는 이들을 보낸 당신은 언젠가 돌아오자고 생각한다. 잔뜩 쓰여 있는 글에 다시 글을 쓸 것이다. 그러나 바다처럼 늙기 위해서 필요한 결을 맞춰야 했다. 당신은 아직 주름이 없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직접 손으로 스쳐서 주름과 부딪히기로 했다. 물론, 아직 바다에게는 모자란 만큼 늙어 있었다. 그래서 밤새 아파했던 배를 쓰다듬었다. 당신은 그런 손처럼 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겠다. 바다처럼, 바다를 떠올리며 바다를 다녀왔다고 적으면서.

진철호(충남대 사회학과ㆍ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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