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된 여우 의류에 쓰이는 털을 위해 여우가 희생됐다. 사진/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쌀쌀해진 날씨에 옷차림이 점점 두꺼워지는 요즘이다. 캐시미어 니트, 울 코트, 앙고라 니트, 오리 털, 거위 털 패딩은 비싼 가격이지만 보온성이 좋아 겨울철 의류로 꾸준한 인기다. 하지만 이러한 의류들의 생산 과정에는 동물의 희생이 담겨있다. 좋은 품질의 털을 위해 동물의 털을 산 채로 가차 없이 잡아 뜯는다. 피가 배어 나오고 빨갛게 부은 피부는 관심 밖이다. 오로지 생산을 위해 동물을 가둬 놓고 털이 자라면 다시 뜯기를 반복한다. 
  이에 최근 소비자들은 소비 행위에 윤리와 가치의 기준을 정립하며 무분별한 동물 착취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동물 복지와 윤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분위기에 따라 등장한 비건 패션(vegan fashion)은 잔혹한 동물 착취를 고발한다.
  비거니즘은 동물성 제품을 최대한 기피하는 실천적 생활 양식을 의미한다. 과거 비거니즘은 채‘식(食)’주의자들에 국한된 일종의 생활 양식으로 통용됐다. 하지만 최근 동물과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의식주 전반에 비거니즘이 자리 잡았다. 비거니즘의 한 흐름으로 등장한 ‘비건 패션’은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비건(vegan)에 패션(fashion)이 합쳐진 용어로 동물의 털이나 가죽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옷이나 가방, 액세서리 등을 통칭한다. 
  윤리적인 소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동물 소재를 배제하고 아크릴이나 폴리에스터 등으로 옷을 만드는 페이크퍼 또는 에코퍼로 향했다. 또 다양한 아웃도어 브랜드에서는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한 플리스 제품을 선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에서부터 환경오염을 줄인 제품들도 등장했다. 비건 패션이 ‘비동물성 소재만을 취급한다’는 개념에만 한정되지 않고 환경 전반에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건 패션은 지속가능함을 우리 의복에 실현하는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했다.

비건 패션 위크 런웨이 2019년, LA에서 첫 비건패션위크가 개최됐다. 사진/ 비건패션위크

  동물 학대 없는 패션
  ‘비건타이거’는 2015년 설립된 국내 최초 비건 패션 브랜드이다.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얻는 모피뿐만 아니라 양모, 실크, 오리털 및 거위털, 앙고라 등 생명을 착취해 생산된 소재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비동물성 소재만을 꼼꼼하게 공수해 패션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또 수익금의 일부는 동물과 환경을 위한 캠페인 비용으로 쓰며 행복한 동물과 건강한 지구를 위해 앞장선다. 
  ‘낫아워스(NOT OURS)’ 역시 비동물성 소재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비건 패션 브랜드이다. 낫아워스는 영문 그대로 ‘우리의 것이 아닌’이라는 뜻으로 ‘우리의 털이 아닌 동물의 털’, ‘우리의 가죽이 아닌 동물의 가죽’과 같은 뜻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원이 아닌 미래 세대의 자원에 대한 고민도 함께 담겨 있다. 낫아워스는 동물성 소재가 고급스럽다는 기존의 편견을 깨고, 좋은 비동물성 소재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의 질 좋은 제품을 제작해 불필요한 재고는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패션을 지향한다. 이는 하나의 제품이 세상에 나오고 폐기되기까지의 과정에 연결된 모든 것들에 최대한 관심을 가지고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신념이 돋보인다.  

낫아워스의 페이크 퍼 코트 폴리에스터로 만든 낫아워스 페이크 퍼 코트다. 사진/ 낫아워스

  비건 패션의 전망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착한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건 패션 시장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문명과 가깝게 지내온 밀레니얼 세대는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해 그에 따라 소비 패턴에도 변화를 준다. 각종 매체들은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의류 제품에 대해 이미 수차례 고발해 동물성 소재로 만든 의류에 대한 밀레니얼 세대의 인식이 재고됐다. 
  모피로 장식됐던 패션쇼의 모습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들이 모피 제품 생산 중단을 줄줄이 선언하며 비건 패션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6년 명품 브랜드 구찌의 모피 제품 생산 중단 선언을 시작으로 지미추, 톰포드, 버버리, 코치, 심지어 고급스러운 모피 제품으로 유명했던 베르사체까지 ‘퍼 프리(fur free)’ 브랜드를 자처했다. 또한 세계 4대 패션쇼 중 하나인 런던 패션위크는 2018년 9월부터 모피 제품을 금지했다. 작년 2월 LA에서는 제1회 ‘비건 패션위크’가 개최돼 이 흐름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비건 패션을 소비하기 전 몇 가지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비건 패션에 쓰이는 일반 식물성 소재는 대부분 재배 과정에서 다량의 살충제 사용과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유기농 재배가 아닌 식물성 소재’로 인한 딜레마가 발생한다. 또 비건 패션 디자인이 동물을 해치는 것을 기피하기 위해 인조가죽이나 인조 퍼와 같은 합성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용품으로서 사용되는 합성소재가 폐기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오염을 초래한다는 문제가 있다.
  비건 패션 브랜드 운영과 관련해 윤리 경영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비거니즘의 실천과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브랜드의 신념보다 경제적 이윤이 중시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단순히 소비 트렌드에 따라 브랜드의 성격, 출시하는 제품이 변화하는 것은 비건 패션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고통 없는 비건 소재
  현대 기술 사회에서 동물의 가죽이나 털만이 인류 복식의 유일한 재료라고 보기 어렵다. 발전하는 과학 기술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소재들이 다양하게 개발됐기 때문이다. 레이온과 아크릴, 웰론은 동물성 소재인 실크, 울, 다운의 좋은 대체재가 될 수 있다.
   레이온은 펄프 등에서 나오는 섬유소 성분으로 구성된 재생 섬유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인견이라 부르는 것으로 고급 블라우스, 정장 의류에 주로 쓰인다. 레이온은 흡습성이 커서 위생적이고 정전기 발생이 적어 안감으로 좋은 재료이다. 하지만 수분을 흡수하면 강도가 감소해 세탁 시 심하게 비비거나 비틀어 짜면 안 된다.
  아크릴은 겨울철 울(wool) 대용으로 스웨터에 많이 쓰이는 합성소재이다. 관리만 잘 한다면 울 함량이 높은 니트 못지않게 잘 입을 수 있다. 내열성이 우수해 따뜻하고, 가벼운 성질 덕에 두꺼운 겨울 의류가 지닌 무게 부담이 적다. 또한 발색력이 좋아서 다양한 색감의 의류를 즐길 수 있다. 아크릴 소재는 고온에 줄어드는 성질이 있어 세탁 시 주의해야 한다. 또 세탁 후 보관 시에는 늘어날 염려가 있으므로 옷걸이에 걸어 두는 것보다는 접어 보관하는 것을 권장한다. 
  웰론은 겨울철 패딩 속 오리 털, 거위 털을 모방한 합성 충전재이다. 2004년 국내 기업인 세은텍스에서 개발해 특허등록한 신소재로 가격 대비 뛰어난 보온성을 자랑한다. 또한 동물성 단백질 성분이 있어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다운 점퍼와 달리 피부가 예민한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다. 웰론 패딩은 세탁 또한 간단하다. 미지근한 물에 중성세제를 풀어 손세탁하거나 세탁망에 넣어 세탁기의 울 코스로 세탁하면 된다.
  동물의 고통 없는 비건 소재 의류로 올해 겨울을 더욱 따뜻하게 보내보는 것이 어떨까? 그 누구의 아픔도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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