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서의 정리

  코로나19는 우리 삶에 난데없는 폭탄처럼 떨어졌다. 사람들은 밖을 나가기 전에 항상 마스크를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견뎌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지나가는 거리와 들리는 가게 곳곳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해달라는 안내문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집 밖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종 모임도 점점 침체하여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은 강도가 다를 뿐이지 어느 정도의 불안과 긴장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나 이번 여름은 세계적으로 장마와 폭우까지 발생하여 바깥공기를 쐬기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햇빛 보기가 어려워지면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코로나와 우울감이라는 단어가 합해진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도 생기지 않았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끝을 알 수 없는 이런 비상사태의 우울을 잘 지나기 위해서 알게 모르게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기사를 보면 실내 취미 용품과 온라인 취미 클래스 서비스의 수요가 대폭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넷플릭스를 보거나, 독서를 하기도 하고 다이어리나 폴라로이드 꾸미기도 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온라인상에서는 400번 저어서 만들어야 한다는 달고나 커피, 1000번 저어서 만들어야 한다는 수플레 계란말이, 1000번 주물러 만드는 아이스크림 등의 노동에 가까운 레시피들을 등장하고 그것들을 따라 하는 사람들도 꽤나 볼 수 있었다.
  필자도 전 학기에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면서 상당한 우울감에 시달렸다. 쇼핑하러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귀찮아서 그저 온종일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전전하면서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취미라도 하나 만들고 싶었으나 유행에 편승해 달고나 커피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한 잔을 위해서 노동력을 쏟아붓는 건 필자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필자가 만든 취미는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때의 정리는 어질러진 방이나 옷을 정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운동이나 치아 관리처럼 자기 관리일 수도 있다. 혹은 전에 했던 생각들(오늘 했던 생각까지도) 정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장바구니에 담아놓기만 하고 잊고 있었던 상품이나 계속해서 읽기를 미뤄뒀던 책이 있으면 일단 그것들을 한 곳에 모아서 정리했다. 그리고 어떤 상품을 내가 계속 사고 싶어 했는지, 어떤 책을 계속 읽고 싶었지만 미루고 있었는지 알아보며 궁극적으로는,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이었는지 상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한번 주변과 나를 정리하고 나면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어디쯤 있는지가 보이면, 다음 행선지를 대략적이더라도 알 수 있었고, 나아가고 싶은 방향도 상기할 수 있었다. 그 방향성이 있다는 게 안정감을 주면서 정리정돈을 하고 있다 보면 조금이라도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정리의 또 다른 장점은 끝이 있다는 것이다. 방 정리든 전화번호든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끝이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자기만의 규칙을 정해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하면 언젠가 자기 눈에 ‘이보다 더 정리할 수 없겠다’ 싶은 순간이 오며 끝이 난다. 정리를 취미로 삼았을 때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것이다. 정리를 한다고 해서 달고나 커피 만들기나 홈트 유행에 휩쓸려서 산 휘핑기나 링피트를 당근 마켓에 되파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김경주 (철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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