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 전염병과의 심리전쟁

인문대학 일어일문학과, 김학순 교수

  2020년 코로나는 일상화된 언어가 되었다. 오전이 되면 전날 지역별 확진자 수와 그들의 동선을 파악한 문자를 확인하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다. 불행하게도 코로나19라는 괴물은 삶의 일부분이 되었고 찜찜한 불안감을 안고 하루를 시작한다. 충남대학교에 부임하여 한껏 기대에 찼던 유토피아는 코로나19라는 괴물 때문에 PPT 작성과 녹음, Zoom을 사용한 온라인 수업에 지쳐가며 디스토피아로 변질되었다. 학생들을 만나지도 못했고 동료 교수님은 사이버 교수가 된 느낌이 아니냐며 안쓰럽게 보셨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방역과 확산 방지에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와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평범한 인간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행과 같다. 신입생, 신입사원, 신임교원 등 신(新)이라는 활기차야 할 한자어 앞에 코로나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자조해 본다. 신입생들에게 농담 삼아 코로나학번이라는 말을 던지며 애써 지금의 현실을 비유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씁쓸하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일본 유학 중에 경험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트라우마가 엄습해 온다. 당시 지진과 쓰나미로 2만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게다가 후쿠시마(福島) 원전이 폭발하여 대량의 방사능이 유출되어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을 보내며 외출 시에는 2개의 마스크를 착용하였다. 나약한 개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지금 역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한 개인 방역과 사회적 거리 두기이다. 하지만 불편하고 불안하고 우울하다. 방사능처럼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거대한 심리적 공포의 괴물이다. 이러한 공포로 인해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었다. 도시 괴담인 빨간마스크는 여성들의 욕망과 그녀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반영한 것이다. 마스크를 벗으면 입이 찢어진 그로테스크한 여성의 얼굴이 보여 진다. 그리하여 빨간마스크의 여성은 철저하게 마스크로 입과 얼굴을 가린다. 현재에는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벗거나 기침을 하면 따가운 시선들이 창궐하고 대중교통도 이용이 어렵다. 결국 마스크를 벗는 행위는 사회적인 일탈 행위이며 마스크 착용은 엄격한 규범이 되었다. 이제는 빨간마스크보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자들이 공포가 되어 버렸다.
  일본에서 유학을 해서인지 최근 많은 분들이 묻는다. 일본에 확진자가 왜 이렇게 많은지, 도쿄올림픽 개최를 위해 확진자 수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일본 방역 체계가 생각한 것보다 엉망인 이유가 무엇인지. 개인위생에 철저하고 규정된 매뉴얼을 잘 지킨다는 일본의 이미지는 코로나 이후 한국보다 의료와 방역 면에서 후진국이 되었다. 현재 확진자 수를 보더라도 한국은 이제 일본보다 위생과 방역에 철저한 나라가 되었다. 식민지 시기 조선의 위생 관념을 극도로 폄하했던 일본은 이제 한국으로부터 배우는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일본은 수많은 요괴가 살고 있는 나라이다. 고대부터 신도 많고 신이 영락한 존재인 요괴도 많다. 예부터 일본인들은 전염병은 역귀(疫鬼)라고 하는 요괴의 짓으로 생각해 왔다. 마쓰리(祭り)라고 불리는 일본의 축제는 전염병 퇴치 기원에서 시작된 것이 많고, 교토의 기온(祇園)마쓰리가 대표적이다. 또한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한 요괴도 등장한다. 최근 일본에서 유행한 아마비에(アマビエ)라는 요괴가 그러하다. 아마비에와 관련된 캐릭터 상품들이 무수하게 판매되고 소비되고 있으며 구전되어 온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구마모토현(熊本縣) 바다에 매일 밤 빛나는 것이 있어 그곳의 관리가 가보니 아마비에라는 요괴가 나타났다. 아마비에는 올해부터 6년간 풍작이지만 만약 유행병이 돌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이라고 지시하고는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머리카락이 길고 부리를 가진 인형의 모습이다. 이외에도 구단(件), 진자히메(神社姫), 구다베(クダ部), 하쿠타쿠(白沢) 등이 전염병을 퇴치하는 요괴이다. 이처럼 전근대 일본인들은 전염병이라는 괴물을 요괴를 통해 심리적으로나마 극복하려 했다. 물론 현재는 의료와 방역을 통한 극복이 최우선의 과제이지만, 일본은 불안과 우울함이 지배하는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요괴라는 캐릭터를 사용해 왔다. 코로나 이후, 전염병 퇴치를 위한 요괴를 재등장시켜 불안한 사회 현실을 반영하며 심리적인 위안을 얻고자 하였다.
  알베르 카뮈가 소설 「페스트에서 페스트를」 결코 사라지거나 죽지 않을 균으로 끝맺고 있듯이, 앞으로의 삶에서 코로나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발전된 방역체계는 코로나를 용인하지 않겠지만, 코로나 확진자의 트라우마, 코로나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과 우울함은 인간의 마음을 계속 지배할 것이다. 인문학자로서 백신 개발과 같은 의학적 성과는 낼 수 없으나, 코로나로 지친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전염병 퇴치 요괴와 같은 심리 백신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수백 명의 신규 코로나 확진자 발생 뉴스가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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