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자연의 섭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새로운 계절을 불러들이고 있다. 어느 새 풀벌레 우는 소리가 매미의 날개 짓을 밀어내고 밤공기를 지배하더니 어느 틈엔가 끈적거리는 공기는 청량한 기운을 품었다. 유례없이 길었던 장마와 거듭해 퍼지는 코로나19로 월하의 탁족(濯足)이든 독작(獨酌)이든 한여름 밤의 정취는 언감생심이었고, 일상의 여유는 마음에서, 거리에서 멀리 벗어나 버렸다. 먼 훗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2020년 여름은 그야말로 감염에서 자유롭지 않은 시간이 끊임없이 이어진 긴장과 긴박의 연속이었을 것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오늘과 내일의 생계를 걱정해야만 했던 고통과 고민이 이어진 시절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려는 이들을 위하여 새로운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켜켜이 쌓여진 지난 시간들이 자양분처럼 힘의 원천이 되리라. 그리고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소소한 세상사의 편린들이 저도 모르게 떠올라 오롯한 시간으로 완성되리라. 우리는 이미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었다.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식당에 쳐진 칸막이는 혼자 사는 사회의 시작을 알리는 사색의 경계가 되었고, 사무실의 빈 의자들은 비대면 사회의 확산을 알리는 생활의 역설이었다. 분절되고 분화된 사회 환경의 변화는 거리두기라는 구호 안에서 의도된 현실이었지만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하고 대비했었다. <충대신문>에서도 혼자 밥 먹는 학생들의 사연이 담긴 기사가 실렸었고, 안전과 건강을 초들기 이전에 자율과 효율을 중시한 시차출근의 확장으로 재택근무는 각광받고 있었다. 하릴없이 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고 더 나은 변화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잠시 예상하지 못한 시련을 맞이한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 또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축구경기에서 선수들의 유니폼에 새겨져 있던 “감사합니다(Danke, Merci)”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이 있기에 이 시련은 더 빨리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비단 사회뿐만 아니라 대학의 울타리 안에서도 새로 시작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대로 망설이거나 기다릴 수만은 없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는 새로운 마음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기회의 문은 어서 두드려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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