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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움 지음
충대신문 | 승인 2019.11.25 16:42|(1158호)

추억에서

                                                              박재삼

 

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다 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만큼 손 안 닿는 한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별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1933년 일본 동경 출생 박재삼 시인은 1953년 「문예」의 작품 ‘강물에서’가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시인은 자연과 소소한 일상에서 찾은 소재로 전통적 음색을 살려 창작 활동을 했으며 주로 민족적 정서인 한(恨)을 묘사했다. 그의 작품에서 ‘한’의 근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첫 번째는 누구든 느낄 수 있는 죽음이나 이뤄지지 않은 사랑 등에 대한 슬픔이며, 두 번째는 시인이 어릴 적에 개인적으로 느낀 가난의 경험에서 온 슬픔이다. 덧붙여 시인의 작품은 토속적인 구어체와 정돈된 율격으로 시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그리고 그의 시에서는 자연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중요한데, 시인에게 자연은 삶과 삶이 가진 이치, 아름다움을 구현해 낸 완전하고 영원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연에 위로를 받지만 때로는 인간 세상의 부족함과 완벽을 자랑하는 자연과의 괴리에 실망하기도 한다.
  1연에서는 어머니가 계신 ‘생어물전’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해 다 진 어스름’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드러난다. 그리고 2연은 장사를 하시는 화자의 어머니에게서 나타나는 한(恨)을 떠올리게 한다. 팔리지 않은 물고기 몇 마리의 눈깔들은 손 닿지 않는 은전(銀錢)과 함께 둥글고 반짝이는 이미지적 유사성으로 연결돼 가난으로 맺힌 한의 정서를 더욱 심화시킨다. 본 시에서는 향토적, 토속적 시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그중 2연의 ‘울엄매’는 어머니를 친근하게 부르는 경상도 사투리이기도 하지만 ‘울다’의 ‘울’이라는 발음과도 같다. 시어 ‘울엄매’는 이런 발음의 동화를 통해 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케 함으로써 애상적 느낌을 자아내는 역할을 한다. 3연에서 화자 오누이는 밝음을 나타내는 ‘별밭’과 대조되는 ‘골방’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며 손 시리게 떨고 있다. 이때 ‘별밭’은 오누이와 멀리 떨어져 있는 소망의 대상으로, 화자에게는 어머니를 비유한 대상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4연에서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회고하며, 달빛에 반사된 옹기들이 반짝거리듯, 남몰래 반짝 글썽이셨을 어머니의 눈물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 시에는 ‘~다’처럼 단정적으로 나타나는 종결 어미가 없다. 시인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고생하신 어머니의 한을 절제된 정서로 회고한다.「추억에서」뿐만 아니라 절제된 감정, 절제된 어조는 시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시적 기법이다. 그렇다면 절제는 왜 사용되며,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우선 절제를 통해 시적 감수성을 획득할 수 있다. 본 시에서 절제가 사라진다면 이 시는 그저 추억을 떠올리는 회상 정도에 머물렀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시인이 독자를 위한 감정의 공간을 남겨 둠으로써 시인의 감정에 독자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로 감정의 절제는 곧 시인 혹은 화자가 자신과 상황을 이성적으로 분리해 극복해냈음을 의미한다. 중용(中庸)이라는 말이 있다. 절제는 감정을 꾹꾹 눌러 쌓아두는 억제도, 그렇다고 무분별한 방종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 있을 것이다. 절제는 어렵지만, 그래서 아름답다.

홍승진(한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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