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래시, 진보 사회의 걸림돌

  “페미니즘 부상에 문학계 고전 재번역 나선다”(경향신문 8월 3일자) 주영재 기자의 기사가 눈길을 끈다. 출판사는 여성 작가가 쓴, 여성 주인공 소설들을 묶어 내놓고, 번역가는 남성 위주의 시각에서 쓰거나 번역한 고전을 여성주의 시각 혹은 양성평등의 시각에서 재번역하며, 이를 현대번역이라고 일컫는다는 것이다.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억압으로부터 탈피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타자들의 권리장전을 다시 작성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출발에서 억압과 차별의 중요한 수단인 언어와 문학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벌어졌던 그러한 억압과 차별이 사회 전반에 작용했던 현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가령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7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지영이 어릴 적부터 학생, 회사원, 엄마가 되어서도 남성과의 차별에 발목이 잡힌 삶을 아프게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은 어린이를 위한 페미니즘 관련 도서도 적잖이 나온다. 이 책들에는 우리 사회는 “아직도 평등사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와 “페미니즘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다”라는 주장이 뒤섞여 있다. 이러한 논란은 실제로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로 비화하여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미국 사회에 두 가지 캠페인이 있다. 미투운동(Metoo)과 타임스 업(Times up)이다. 주지하듯 미투는 성범죄 피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며, 타임스 업은 제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타임스 업은 직장 내 성폭력을 은폐하려는 회사를 처벌하는 법률 제정을 촉구하고, 직장 임원의 남녀 비율을 동등하게 맞추자는 활동이다.
  이러한 진보적 사회 운동과 관련된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라는 책이 2년 전 번역돼 나왔다. 백래시(backlash)는 진보적인 사회 현상에 대해 기득권층이 영향력 약화를 염려해 반발하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80년대 미디어, 상업주의, 우파정치가 결탁한 반페미니즘 여론전의 전말을 보여준다. 당시 뉴욕타임스, 뉴스위크 타임과 같은 주류 언론이 근거 없는 통계와 검증되지 않은 심리학을 동원해 페미니즘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여자가 많이 배우거나 혼기(20대)를 놓치면 영영 결혼과 멀어진다”, “직장여성은 자궁내막증과 스트레스 등으로 불임이 될 확률이 높다”, “여성해방은 여성을 까칠한 독신녀로 만들어 우울증을 앓게 한다”, “여성해방은 멀쩡한 주부를 가난한 이혼녀로 만든다” 등의 편견을 생산해 유통했다.
  불과 40여 년 전인데 메이저 미디어가 천연덕스럽게 이런 ‘가짜뉴스’를 만들어냈다니 놀랍다. 수잔 팔루디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 이는 여성들이 결승선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여성들을 멈춰 세우는 선제공격이다.” 의미심장한 주장이다.
  수잔 팔루디의 책 외에도 김태권의 『불편한 미술관』은 그림에 들어있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식민지인 등 소수자의 인권이 어떻게 유린당하여 왔는가를 보여준다. 가령 슈테판 볼만의 「책 읽은 여자는 위험하다」는 그림을 통해 여성 독서의 서글픈 역사를 보여준 점은 흥미롭다. 아무튼 최근의 몇몇 책들에서 보여주는 백래시는 우리 사회의 진보를 막아서는 걸림돌이다. 반드시 넘어서야 할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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