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종 저, '한국 현대수필 100년'

  이상, 이효석, 이태준, 김동인, 주요섭. 우리는 이들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소설가로 기억한다. 노천명, 백석, 박종화는 아름다운 시구와 함께 우리에게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설과 시를 지어 문명을 얻은 이들이 쓴 수필은 어떨까.
  혹자는 수필을 잡문이라고 말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신의 수필을 묶어 낸 책을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이라 제목 붙였다. 그러나, 수필이 과연 그렇게 ‘잡문’으로 치부될만큼 쉽게 쓸 수 있는 것일까?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쓴 글은 모두 수필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에 조금이나마 해답을 주는 책이 『한국 현대수필 100년』(김우종 저. 연암서가)이다.
  저자인 김우종 교수는 1919년 우리나라에 동인지 『창조』가 나오고 문인들이 수필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약 100년을 헤아려 100여 편의 작품을 선정해 이 책에 실었다. 이는 평균적으로 따져 1년에 한 편씩 골라 100년의 시간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만든 셈이다. 결국 이 책은 지난 100년간의 한국 수필의 발자취라 할 수 있다.
  저자와 독자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누구나 여러 공간에서 자유로이 글을 쓸 수 있는 시대.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고, 브런치에 자기 생각을 피력하며 소통하고 공감한다. 이런 일상의 기록들과 가장 유사한 문학장르가 수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시나 소설에 비해 수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관심은 드물다. 누구나 쓸 수 있고 조금만 노력하면 잘 쓸 수 있는 쉬운 영역이라 여기기 때문일까.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수필 역시 상당한 기교가 필요하고, 자기만의 스타일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는 장르임을 실감하게 된다. 묘사 기법을 활용해 한 편의 수채화와 같은 아름다운 인상을 주는 수필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시, <사슴>으로 잘 알려진 노천명의 수필 <서울의 봄>이다.
서울의 봄은 눈 속에서 온다.
  남산의 푸르던 소나무는 가지가 휘도록 철겨운 눈송이를 안고 함박꽃이 피었다. 달아나는 자동차와 전차들도 새로운 흰 지붕을 이었다. 아스팔트 다진 길바닥, 펑퍼짐한 빌딩 꼭대기에 백포가 널렸다. 가라앉는 초가집은 무거운 떡가루 짐을 진 채, 그대로 찌그러질 듯하다. 푹 꺼진 기왓골엔, 흰 반석이 디디고 누른다. 비쭉한 전신주도 그 멋갈 없이 큰 키에 잘 먹지도 않는 분을 올렸다.
 두께두께 언 청계천에서도, 그윽한 소리 들려온다. 가만가만 자취 없이 가는 듯한 그 소리, 사르르사르르 이따금 그 소리는 숨이 막힌다. 험한 고개를 휘어 넘는 듯이 헐떡인다. 그럴 때면, 얼음도 운다. ‘쩡’하며 부서지는 제 몸의 비명을 친다. 언 얼음이 턱 갈라진 사이로 파란 물결은 햇빛에 번쩍이며 제법 졸졸 소리를 지른다.
  노천명은 비유와 감각 이미지를 이용해 이 글을 썼다. 그의 수필에서 수채화 같은 맑은 풍경이 그려진다. ‘쩡’, ‘사르르사르르’, ‘졸졸’과 같이 청각과 촉각 이미지를 가진 단어들로 생생한 현장감도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시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심상이 수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은 가슴을 조이며 읽는 재미를 준다. 깊이 있는 사유를 거쳐 쓴 철학책은 당면한 삶의 문제에 한 가닥 실마리를 준다. 일상의 틈새에서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수필 한 편은 그 길지 않은 글 속에 맑게 스미는 햇살 같은 부드러움이 있다. 분주한 일상에 지칠 때 수필 한 편씩 가볍게 읽으며 따스한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

마기영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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