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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독서김우종 저, '한국 현대수필 100년'
충대신문 | 승인 2019.09.03 16:32|(1154호)

  이상, 이효석, 이태준, 김동인, 주요섭. 우리는 이들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소설가로 기억한다. 노천명, 백석, 박종화는 아름다운 시구와 함께 우리에게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설과 시를 지어 문명을 얻은 이들이 쓴 수필은 어떨까.
  혹자는 수필을 잡문이라고 말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신의 수필을 묶어 낸 책을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이라 제목 붙였다. 그러나, 수필이 과연 그렇게 ‘잡문’으로 치부될만큼 쉽게 쓸 수 있는 것일까?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쓴 글은 모두 수필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에 조금이나마 해답을 주는 책이 『한국 현대수필 100년』(김우종 저. 연암서가)이다.
  저자인 김우종 교수는 1919년 우리나라에 동인지 『창조』가 나오고 문인들이 수필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약 100년을 헤아려 100여 편의 작품을 선정해 이 책에 실었다. 이는 평균적으로 따져 1년에 한 편씩 골라 100년의 시간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만든 셈이다. 결국 이 책은 지난 100년간의 한국 수필의 발자취라 할 수 있다.
  저자와 독자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누구나 여러 공간에서 자유로이 글을 쓸 수 있는 시대.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고, 브런치에 자기 생각을 피력하며 소통하고 공감한다. 이런 일상의 기록들과 가장 유사한 문학장르가 수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시나 소설에 비해 수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관심은 드물다. 누구나 쓸 수 있고 조금만 노력하면 잘 쓸 수 있는 쉬운 영역이라 여기기 때문일까.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수필 역시 상당한 기교가 필요하고, 자기만의 스타일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는 장르임을 실감하게 된다. 묘사 기법을 활용해 한 편의 수채화와 같은 아름다운 인상을 주는 수필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시, <사슴>으로 잘 알려진 노천명의 수필 <서울의 봄>이다.
서울의 봄은 눈 속에서 온다.
  남산의 푸르던 소나무는 가지가 휘도록 철겨운 눈송이를 안고 함박꽃이 피었다. 달아나는 자동차와 전차들도 새로운 흰 지붕을 이었다. 아스팔트 다진 길바닥, 펑퍼짐한 빌딩 꼭대기에 백포가 널렸다. 가라앉는 초가집은 무거운 떡가루 짐을 진 채, 그대로 찌그러질 듯하다. 푹 꺼진 기왓골엔, 흰 반석이 디디고 누른다. 비쭉한 전신주도 그 멋갈 없이 큰 키에 잘 먹지도 않는 분을 올렸다.
 두께두께 언 청계천에서도, 그윽한 소리 들려온다. 가만가만 자취 없이 가는 듯한 그 소리, 사르르사르르 이따금 그 소리는 숨이 막힌다. 험한 고개를 휘어 넘는 듯이 헐떡인다. 그럴 때면, 얼음도 운다. ‘쩡’하며 부서지는 제 몸의 비명을 친다. 언 얼음이 턱 갈라진 사이로 파란 물결은 햇빛에 번쩍이며 제법 졸졸 소리를 지른다.
  노천명은 비유와 감각 이미지를 이용해 이 글을 썼다. 그의 수필에서 수채화 같은 맑은 풍경이 그려진다. ‘쩡’, ‘사르르사르르’, ‘졸졸’과 같이 청각과 촉각 이미지를 가진 단어들로 생생한 현장감도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시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심상이 수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은 가슴을 조이며 읽는 재미를 준다. 깊이 있는 사유를 거쳐 쓴 철학책은 당면한 삶의 문제에 한 가닥 실마리를 준다. 일상의 틈새에서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수필 한 편은 그 길지 않은 글 속에 맑게 스미는 햇살 같은 부드러움이 있다. 분주한 일상에 지칠 때 수필 한 편씩 가볍게 읽으며 따스한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

마기영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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