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오랜만에 찾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제목에 이끌려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한겨레출판, 2018).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공부’라는 단어와 ‘슬픔’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나란히 씌어 있다. 게다가 슬픔을 공부하는 것도 모자라 거기서 비롯되는 슬픔이라니. 그렇다면 왜 슬픔을 공부하고 난리란 말인가.
  표지에는 어떤 남자의 쭈그리고 앉은 뒷모습이 있다. 운동화를 신고 흰 셔츠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에서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순 없지만 나는 중년의 남성을 떠올렸다. 헤어스타일과 귀 뒤로 흐르는 목선, 약간 굽은 듯한 등 때문에 그를 젊은이로 보아지진 않았다. 그의 쭈그린 뒤태는 글쎄, 슬프다기보다 조금 지쳐 보였다.
  저자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저자 신형철은 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명 소설가들이 책 출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그로부터 자기 책의 해설을 받고 싶어할 만큼 그 분야에서 ‘핫’한 사람이다. 나도 국문학 공부를 하며 논문을 통해, 혹은 소설책 발문을 통해 그의 글을 접해보았다.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고 직설적이면서도 작품을 깊이 이해하려고 애쓰는 그의 글에 반한 적이 있다. 그런 사람이 쓴 산문은 어떤 온도일까 궁금해 차근히 읽어보았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망라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의 전문분야인 시, 소설과 같은 문학만이 아니라 영화, 음악, 신화, 대중가요에 이르는 다양한 예술장르를 대상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뿐 아니라 공적 슬픔이라 할 사회적 사건(세월호, 5.18)이나 스포츠, 상품에 대한 저자의 견해도 읽어볼 수 있다. 저자는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때그때 마감에 허덕이며 발버둥을 쳐서 겨우 한 편씩 완성한 글들을, 시간이 지난 후에 수정‧보완해서 묶다보니 이렇게 다양한 내용들이 나오게 되었다고 말한 적 있다. 책의 제목처럼 오직 ‘슬픔’이라는 한 단어에 천착해 사유하고 공부하여 쓴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책의 주된 주제는 슬픔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저자는 우리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의 슬픔이라면?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우리에게도 답을 요구한다. 즉답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깊이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너무 어려우면 잘 읽히지 않는다. 가끔 학자들이나 평론가들이 쓴 현학적인 글들을 보며, 이 책은 읽히기 위해 썼나 아니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썼나 생각하게 된다. 신형철의 문장은 쉬우면서 진실하고 읽기 쉽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저자는 ‘자신의 시간을 내어준다는 의미에서 글쓰기는 나의 생명의 일부를 할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글 읽기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생명의 일부를 내어주고 쓴 책인 만큼, 우리도 그 책을 읽음으로써 단순한 기분의 차원에 머무르지 말고 깊은 사유의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되면 좋겠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으며 자기 자신이 얼마나 슬픈지, 남의 슬픔을 얼마나 이해하려하고 있는지, 슬픔을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러다보면 책표지에 그려진 남자의 뒷모습에서도 슬픔을 읽고 이해하게 될지 모른다.  

 (마기영,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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