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충대신문 문화·문예
지금은 한국프로야구(KBO) 전성시대
김재민 기자 | 승인 2019.06.21 14:12|(1153호)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는 현재 대단하다. 연간 관중수로 본다면 약 800만여 명으로, 한국에 있는 모든 프로 스포츠 종목 중에서 1등이다.
  한국의 야구는 구한말, 1905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 (한국명: 길례태)가 한국에 황성 YMCA 야구단을 조직하면서 시작됐다. 그 후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조선 야구협회가 재조직됐으며, 1946년 9월 휘문, 경신, 배재, 중앙 4개 팀이 서울운동장에서 리그 부활전을 열며 한국 야구 부활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약 8년 뒤인 1954년 한국은 국제야구연맹에 정식 가입했고, 같은 해 필리핀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이 최초로 결성됐다. 1982년 3월 37일 역사적인 프로야구의 개막전이 열렸다.
  프로야구팀은 해체되기도 하는 비극이 있었다. 2008년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 야구단은 2011년 넥센 타이어와 메인 스폰서 계약을 맺으며 지금의 ‘넥센 히어로즈’가 됐다. 그 후 넥센 히어로즈는 키움 증권에서 인수를 하여 키움 히어로즈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 최종적으로 현재는 ‘NC 다이노스’와 2013년 창단된 ‘KT 위즈’까지 합해 총 10개의 프로야구단이 한국의 야구 역사를 쓰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부흥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는 매우 굴곡이 많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때 큰 위기를 맞게 된다. 한국 경제가 순식간에 붕괴하자 프로야구의 주 고객층이던 중산층과 성인 남성이 직격탄을 맞은 게 치명적이었다. 이 후로 국내 프로야구의 인기는 한층 사그러지게 됐다.
  프로야구 관중 감소는 2000년대 들어 더 심화했다.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를 ‘잃어버린 7년’이라고 표현한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 연속 총 관중 200만 명대를 기록하고, 2005년과 2006년에도 300만 명대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 기간 프로야구는 월드컵과 올림픽을 두 번씩 겪었다. 당시만 해도 국제대회가 있는 해엔 프로야구 흥행이 좋지 않았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결정타였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쓰며 국내 제일의 프로 스포츠라 자부하던 프로야구는 프로축구에 일인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어린이와 여성은 노장 일색에 경기가 3시간 넘기 일쑤인 야구를 외면하고, 젊은 선수들의 빠른 플레이가 돋보이는 축구에 열광했다.
  그러다가 2006년, 야구 국제대회가 숨이 꺼져 가던 프로야구를 되살렸다. 그해 3월에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인공호흡기였다. 당시 한국 야구대표팀은 야구 강호인 일본, 멕시코, 미국을 차례로 꺾으며 4강에 진출했다. ‘야구 변방’이던 한국이 세계 최고 선수들이 즐비한 야구 강국을 제압한 건 일대 뉴스였다. 특히나 한국 선수들이 ‘야구의 신들’로 여기던 메이저리그 올스타팀 미국을 물리친 건 국내 야구팬들에겐 획기적 사건이었다. 사실 당시 야구팬들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며 한국야구의 수준을 낮게 보던 차였다. 그러나 세계 최강 미국을 꺾자 국내 야구팬 사이에서 ‘한국야구 재평가’ 논의가 일었고, ‘KBO리그가 메이저리그보다 재밌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한국 축구를 살렸듯 2006년 WBC는 분명 죽어 가는 야구를 되살린 구원자였다. 다음 해인 2007년 프로야구는 11년 만에 400만 관중을 회복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은 ‘한국야구가 세계 최고’라는 자긍심으로 이어졌고, 야구 흥행의 직접적인 기폭제가 된다. 400만 관중을 회복한 지 1년 만인 2008년 프로야구는 총 관중 525만 명을 기록했다. 2009년엔 592만 명으로 600만 명 코앞까지 다가선다. 한국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차례로 좋은 성적을 내며, 축구에 빠졌던 어린이와 축구선수를 따라다니던 여성 스포츠팬들의 눈길을 야구장으로 돌린 건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실제로 2006년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을 때 어린이와 여성팬은 400% 이상 증가했다.
  이후 프로야구는 국제대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난공불락의 시청률을 자랑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 프로야구 시청률은 스포츠채널마다 1.5%대였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며 방송가에선 ‘프로야구가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월드컵 기간 내내 프로야구 시청률은 변함이 없었다. 고작 0.2%P가 준 1.3%대였다. 이렇게 국내 프로야구가 부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KBO 리그 vs K 리그
  KBO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스포츠 리그이다. 4배 이상 차이나는 관중 수치가 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인기스포츠로 꼽히는 축구의 K리그는 KBO보다 관중 수가 현저히 낮다. 왜 그런것일까?
  이와 관련한 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구단과 리그의 역사이다. 프로야구는 리그 팀의 75%가 25년 이상의 역사, 50%가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K리그는 팀의 50%가 15년 미만, 87%가 30년 미만의 연고정착 역사를 가지고 있다. K리그는 팀의 3분의 1이 창단한지 10년이 채 안된 것이다. 구단의 역사와 종목 특성의 차이로 인해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프로 스포츠에 있어서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 그 팀의 성적이 우수하든 그렇지 못하든, 스타 플레이어가 있든 없든 역사가 있고 없고는 팀에 대한 연고 지역민들의 애정도에 차이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당장은 팀이 초라해 보이고, 관심을 갖기가 어렵더라도 특정 계기를 통해 충성도 높은 팬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포츠이다. 100년이 넘어가는 팀들이 많은 영국의 프로축구 리그 EPL과 미국의 프로야구 리그 MLB 팀들이 팀의 역사를 강조하고 역대 선수와 감독들을 팬들에게 소개하는 이유는 역사가 바로 구단의 위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한국야구의 발전을 위해
  한국프로야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열악한 야구장 환경 해결이 최우선이다. MBC가 2011년에 실시한 ‘오늘 이후 다시 야구장에 올 생각이 있느냐’는 설문에 놀랍게도 절반이 넘는 신규 야구팬들이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고 답변했다. 여성 팬들은 70% 이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유는 ‘좌석 간격이 좁아 움직이기 불편하다’, ‘화장실이 작고 불결하다’, ‘구장 내 매점에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 등으로 다양했다. 특히 여성 팬들은 ‘10분 이상 기다려야 이용할 수 있는 비좁은 화장실’을 최대 문제로 꼽았다. 실제로 8개 구단의 홈구장 가운데 여성 팬들이 어려움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인천의 문학구장밖에 없다. 대구, 광주, 대전, 목동구장은 주말경기 시 20m 이상 길게 줄을 서야 한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잠실, 사직구장도 화장실 사용 시 줄을 서야 하는 건 별반 다르지 않다.
  구단이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MBC 야구프로그램 ‘야구 읽어 주는 남자’에 따르면 구단들은 “화장실 증설뿐만 아니라 지역 특색에 맞는 음식점을 구장 안에 배치하고 싶어도, 구장 소유주인 지자체의 비협조와 각종 법규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각 시 자체에서 구단 관련 법률 등을 유기적으로 수정하는 노력을 통해 경기장을 개선해야 더 많은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 모두가 야구에 대한 저변확대와 수지개선, 아마추어 야구의 육성 등의 수많은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더불어 프로야구 구단의 운영진은 더 큰 도전정신과 목표의식을 가지고 야구를 발전시켜야 한다. 제대로 된 야구장, 쾌적한 환경제공, 사회인 야구를 위한 저변 확대 등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면 한 층 수준높은 리그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대전시에는 한밭종합운동장을 허물고 베이스볼 드림파크를 건설하기로 했다. 새 야구장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현재는 돔구장과 개방형 구장 중에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김재민 기자  kjaemin99@cnu.ac.kr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관련기사 icon충남대 야구리그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05-764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99  |  대표전화 : 042)821-6141  |  팩스 : 042)821-72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형권
사장 : 오덕성  |  편집인/주간 : 이형권  |  충대신문편집국장 : 구나현  |  충대포스트편집국장 : 손지은  |  충대방송편성국장 : 김선웅
Copyright © 2011-2019 충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