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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일지두 개의 심장으로 바랐던 독립, 안경신 열사
충대신문 | 승인 2019.05.29 10:06|(1152호)
안경신 열사,  사진/ 국가보훈처 제공

  치마폭에 임신한 배와 폭탄을 숨긴 독립운동가가 있으니, 바로 안경신 열사이다. 1888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난 안경신 열사는, 1919년 평양에서 열린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또한 군자금을 약 2천 4백여 원이나 모집한 대한애국부인회의 교통부원으로서 군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1921년 대한애국부인회가 군자금 송치 중 일제에 발각돼 해산됐지만, 안경신 열사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후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대한 광복군총영’에 가담해 결사대 일원이 됐다. 
  “평양에서는 폭탄 사건이 일어나서 매우 소동되며 평양 천지는 가위 물 끓듯 했다”, 매일신보가 1920년 8월 3일 밤 평남경찰부에 터진 폭탄 사건을 두고 쓴 기사의 일부이다. 이날의 거사를 위해 안경신 열사는 중국에 위치한 대한광복군 총영 본부에서 출발해 치마에 폭탄을 숨기고 일제의 삼엄한 경비를 뚫어가며 도보로 평양에 이르렀다. 안경신 열사와 대원들은 3조로 나눠 평남도청에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진행했는데, 이때 안경신 선생이 포함된 2조만이 폭탄을터뜨리는 데 성공해 일경 2명을 처치했다. 이후 안경신의 동료 대원들은 무사히 귀환했지만,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안경신 선생은 귀환에 실패해 국내에 몸을 숨긴다. 7개월 후 체포된 안경신 열사는 당시 태어난 지 2주가 채 안 된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재판장에 들어선다. 그녀는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지만, 임시정부가 “평남도청 폭탄 사건은 임시정부 특명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안경신은 전혀 무관하니 석방하라”는 내용의 투서를 보내는 노력 끝에 징역 10년으로 감형 받을 수 있었다.
  법정에서도 안경신 열사는 “조선 사람이 조선 독립운동을 하여 잘 살겠다고 하는 것이 무슨 죄냐”며 소리쳤다고 한다. 그녀는 청원이나 협상에 회의적이였으며 무력 투쟁만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일제 침략자를 놀랍게 해서 그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곧 무력적인 응징이다”라는 선생의 말에서 독립과 무력투쟁을 향한 확고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여성 독립운동가임에도, 임신한 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우 강인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남녀의 구분이 없었다는 점을 마음에 새기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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