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
 

마음에 드는 시를 찾아 모방을 하기위해 시집을 읽었다 얼마 전 내가 적은 문장을 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시집을 덮었다 시가 생각나지 않았다

가슴 왼편에 꿈틀거리는 게 사라진 일이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인데 일어난 것이다 막 구상을 마친 하나의 세계가 무너진 일 어떤 사람이 쳐다본다 공포에 질린 것 같은 내 표정을 그 사람이 괜찮은지 물어본다 나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겁이 났다

나의 마음에 들었던 것들은 언제나 공유되어 왔던 걸까 지하철에 탄 사람들은 나와 같은 구두를 신고 있었고, 내가 내리자 그림자처럼 전부 따라왔다 따라오던 아이가 넘어졌다 아이는 웃고 있다 나는 울었다 욱신거렸다
우리는 같은 이름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더 편할 테니까 강의실에 도착했고 교수님은 출석을 불렀다 분명 나의 이름을 불렀는데, 맨 앞에 앉은 사람이 손을 들며 대답했다 이상하다 생각도 언제나 공유되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강의가 끝나자 이 세계는 크게 흔들렸다 내가 강의실에서 나가고, 또 다른 내가 나가고, 방금 나간 내가 강의실에 들어와 책을 챙겨서 다시 나갔다 우린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곳에서 내려 함께 집으로 가겠지 같은 구두를 신은 채로 뒤꿈치를 조금씩 깎아내리면서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시집을 다시 폈다
모방된 세계가 마음에 들었다
이름이 생각났다

두근거렸다 네가 내가 누가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모방되었을 것이다 미완이다

최재혁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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