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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회 충대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오빠는 그러니까, 너무 섬세해서요.
충대신문 | 승인 2019.05.28 18:33|(1152호)

  그렇게 섬세한 사람이었다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도 모르고 살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실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스꽝스럽지만 그렇게 생각했었다. 언젠가는 좋아하게 될 거라고.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말을 하는 사람 자신도 본인에 대해서는 결코 그렇게 후하지 않다는 점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아내 황씨는 좋은 집안에 재능도 뛰어났지만, “제갈량의 부인 얻는 법은 결코 배우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만약 박색의 대명사인 황씨가 당신을 좋아한다면,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대는 열 번 찍기 전에 넘어갈 수 있겠는가. 전해오는 옛말마냥 사람들은 본인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내 경우는 다르다고 여긴다. 아마 나라고 달랐을까 싶다.
  내일이면 서른이 되는 오늘에서야 겨우 이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오늘은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낼모레에 서른일 스물여덟의 어느 날쯤이었을까. 비로소 인생의 3분의 1 가까이나 산 뒤에야 내가 좋아하는, 사랑하는 누군가가 내가 그 사람을 진심으로 죽도록 원하고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았고 인정할 수 있었다. 옛 친구를 만나자고 한 건 이 이야기를 너무 하고 싶어서였다. 그 옛날, 난 1년이면 그 친구도 마음을 돌릴 줄 알았다. 물론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이제서야 깨달은 것처럼 그 친구가 날 당연히 좋아해야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 편한 친구 사이로 되돌아온 우리는 (물론 그 안에 약간의 어색은 있었지만) 편안히 웃으며 예전 그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날 내가 배우고 깨달은 것을 채 자랑하기 전에, 그 친구는 내가 이야기하려던 것을 넘어서,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또 다른 ‘득도’의 경지를 깨우쳐 주었다.
  “오빠는 그러니까, 뭐랄까, 너무 섬세해서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 음. 세상에 ‘섬세’처럼 어려운 단어가 또 있을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 말이 너무나도 맞는 말이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잠깐의 시간이 마치 영원과도 같이 느껴졌다.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많은 기억과 생각 속에서도,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섬세’겠구나 싶었다. ‘섬세’. 지금 정의내리라고 해도 한마디로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닐텐데, 나를 설명하는 표현으로 이보다 더 적합한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에 머릿속을 맴도는 너무 많은 생각의 다른 한쪽으로는, 멍한 듯 어안이 벙벙했던 내게 친구는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좀 더 무던했더라면 아마 만나볼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죠. 그리고 그때는 정말 아니었어요. 다른 때였다면 달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오래전에도 했었고, 이 날도 내가 하고 싶었던 바로 그 얘기가 뒤이어 따라왔다. 그 친구의 말처럼 “그때는 정말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인연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날까지 수 년 동안 나는 결국 그때를 기다리지 못한 내 노력이 부족했던 탓에 인연을 만들지 못했다고 여겼다. 물론 이제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노력했다면, 더 오래 기다렸다면 달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다른 때였다면 달랐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 내가 깨닫고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노력으로만 말미암지 않는다는 것, 그 옛날 우리가 잘 되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 ‘때’가 맞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이것으로 마치 새로운 진리를 깨달은 양 기뻐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본질적인 문제를 자각시켜 주었다. “오빠는 그러니까, 너무 섬세해서요.”
  딴에는 오랫동안 그 친구를 보채지 않고, 나름대로 무던해 보이는 척을 하려고 그렇게도 애썼건만. 또 그랬던 까닭에 그 친구는 나의 예민한 면모를 아예 모를 수는 없어도, 아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만큼 나름대로는 피 나는 노력을 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친구는 나의 그런 눈물겨운 노력까지도 모두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면서 ‘섬세’의 의미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 친구가 참 좋았다. 차분하고 겉보기에도 무던해 보여서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어른스러웠고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너무나도 단정해 한편으로는 차가운 사람 같다는 느낌에, 스스로 예민함을 감수성으로 잘 포장해 가면서 나는 우리가 좋은 한 쌍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자신과는 달리 내가 상처도 잘 받는 편이고, 혼자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며, 또 예민한 성격을 겉으로 담담하게 표현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한편으로는 무던해 보이려고 애쓰는 내 모습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때 잘 참고 지나간다고 해서 내가 지난 기억과 사실을 시원스레 잊어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좀 더 무던했다면 아마 좀 달랐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건 성격이니까.” 마지막에 덧붙인 성격이니까 나의 잘못은 아니라는 그 한마디까지.
  “좋게 말해서 섬세야. 그냥 예민하고 까다롭다는 말이야. 좀 고쳐라.”
  이 말을 전해 들은 다른 친구는 냉정한 평가를 내려 주었다. 맞는 말이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 친구가 ‘섬세’라고 에둘러 좋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았음을 가슴 깊이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내가 생각해 왔던 때와 노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그렇긴 한데 이걸 고친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그렇게 쉽게 고칠 수 있었다면 나도 얼마나 좋았겠나. 예민함을 티 내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썼던 것처럼, 쉽게 바꿀 수 있는 성격이었다면 아마 100번도 넘게 바꿨을 거다. 그런데 어쩌나. 사람의 성격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 나도 이 성격을 좋아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내 나름으로는 예민한 면을 고치고, 무던해지기 위해 항상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성격인데 어쩌겠는가. 아마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친구는 성격이니까 나의 잘못은 아니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겠지.
  삶에는 의지대로 되지 않는 어떤 것들이 있다. 성격을 바꾸는 일도 그 가운데 한 가지겠지만, 이 날, 아니 이때부터 나는 “오빠는 그러니까, 너무 섬세해서요.”라는 그 말 한마디에 이 친구에게 가졌던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 이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적어도 내게는 그 말이 너무나도 맞고 당연해서 더 이상 어떤 다른 말도 덧붙일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 말을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과연 옛날의 나도 “섬세해서요.”라는 말을 듣고 지금처럼 차분하고 깨끗하게 인정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수 년의 시간과 또 지난 경험 덕분에 진실을 인정하고 온전히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면, 나이를 결코 허투루 먹지만은 않았다는 느낌에 꼭 속상하지만은 않다. 그러니까 나는 비록 ‘섬세’하지만, 이제는 그 ‘섬세함’을 인정할 수는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다.

이두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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