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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 일구
충대신문 | 승인 2019.05.28 17:57|(1152호)

  비 오는 날에는 더 멀리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게 좋았다

  오늘 학교로 향하는 재희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졸업을 목전에 앞둔 2019년, 뭐라도 성취를 해보고 싶어서 도전했던 마케팅 공모전이었다. 물론 준비 과정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일단 하나의 광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힘을 들여서 만든 것이건만 왠지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참신함이 부족한 작품만 만들어지는 것이 그녀를 답답하게 했다. 삭제와 추가를 반복하며 한 달 동안 영상 작업을 계속했다. 결국 제출 기간 하루 전에 영상은 완성되었고 그걸 몇 번이고 확인해보면서 새삼 재희는 뿌듯해졌다. 작품이 자식 같다는 흔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아기가 이것저것 어설프게 옹알이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별 거 없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온 세상에 ‘우리 아기’를 자랑하고 싶어질 만큼 가슴 떨리고 대견한 일일 것이다. 재희의 영상도 쟁쟁한 많은 경쟁작들에 비하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작품이고 자세히 뜯어보면 부족한 면도 많지만 막상 완성이 되자 그녀의 눈에는 그저 기특하기만 했다. 친구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만들고 스스로 감탄한다며 재희를 놀렸지만 그래도 뿌듯한 미소는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결국 그 작품은 수상작 어디에서도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럴 만도 했어.
 -그래도 입선도 못하다니...
 재희는 좀 어지러워졌다. 수업 내내 눈은 칠판과 공책을 번갈아 가며 왔다갔다 바라보았지만
솔직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겨우 입상도 못할 광고 하나를 만들기 위해 4년을 배워 온 것일까.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해야 하는데 발걸음을 뗄 수도 없었다. 게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듣고 온 터라 우산은 있었다. 그러나 우산을 펴도 비는 세찬 바람에 휩쓸려 우산 아래를 마구 침범해왔다. 스마트폰 액정도 빗방울에 젖어 터치가 잘 되지 않았고 가방은 조금 염려될 정도로 축축해졌다. 결국 교양관 쪽 정류장에 서서 순환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궁동으로 바로 가는 A노선 차량이 아니라 B노선 차량을 탔다. 졸업도 멀지 않았고 착잡한 마음도 달래볼 겸 일부러 멀리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로 한 것이다. 버스에 올라타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눈을 감았다. 날카로운 음악 소리가 부정적인 생각들을 흩뜨려 놓았다. 순환 버스는 안정감 있게 달렸다. 빗방울들은 세차게 창문을 때렸다. 물이 스며들지는 않았지만 버스 안의 공기도 전체적으로 축축해졌다. 그 축축함이 재희의 마음까지 절여 놓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이 버스는 나를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 주겠지.
 재희는 자신의 삶이 돌아가더라도 결국 종착지에 다다르는 순환버스인지 아니면 잘못 탄 버스인지 생각에 빠졌다. 갑자기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시끄러운 음악이 멈추고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어머니였다.
 “여보세요?”
 “재희야. 졸업 전에 집에 올 거지? 너 저번에 감기 걸려서 고생 좀 했다고 해서 니가 좋아하는 반찬들 다 준비해놨어. 4년 동안 고생도 많았구.”
 “엄마...고생했으면 뭐해요. 저 이번에 공모전에 떨어졌어요...”
 “그게 뭐가 중요하냐. 앞으로 그런 거 수천수백개를 더 할 텐데. 그래도 일단 재희 니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남들한테도 좋은 사람이 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거지. 어떻게 하든 사람은 제 길대로 사는 법이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종강하면 당분간은 푹 쉬어!”
 하루 내내 경직되어 있었던 재희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피어났다. 문득 창밖을 보니 벌써 종착지인 공대 2호관 옆, 궁동 가는 길 정류장이었다. 소나기는 이미 멎어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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