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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 승인 2019.05.28 17:55|(1152호)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철학자들은 가끔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철학자들이 던지는 아포리즘은 종종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때론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기존 가치체계에 길들여진 사람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무지한 스승이 참된 스승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이 발화는 어떠한가.
  자크 랑시에르의 책『무지한 스승』(양창렬 역, 궁리, 2015 개정판)은 프랑스의 석학 조제프 자코토가 벨기에에서 겪은 일화로부터 시작된다. 먼저 조제프 자코토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자코토는 대단히 뛰어난 석학이었다. 9세에 초등과정을 마치고, 14세에는 중학교에서 수사학을 가르쳤다. 16세 때부터 대학에서 법 공부를 시작했고, 19세에 법학 학사학위를 받아 변호사가 되었다. 이후 분석, 이데올로기, 고전어, 순수·초월 수학, 법학을 가르쳤고 나중에는 동향 사람들의 간청에 못 이겨 국회의원까지 되었다. 그러다 부르봉 왕가가 복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네덜란드령이었던 벨기에로 망명하였다.
  자코토는 1818년 벨기에 루뱅대학 불문학 담당 강사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코토 자신은 네덜란드어를 전혀 몰랐고, 수업을 들으려던 학생들 대다수는 프랑스어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학생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기 위한 최소한의 연결고리를 찾던 그는 페늘롱이 쓴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의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판을 찾아냈다. 그는 이것을 학생들에게 주고 네덜란드어 번역문을 사용하여 프랑스어를 익히라고 주문했다. 프랑스어의 활용법이나 그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는 학생들에게 책의 앞부분을 쉼 없이 되풀이하라고 시키고 나머지 부분은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만 읽으라고 시켰다. 그렇게 어떤 정보도 없이 스스로 공부한 학생들에게 읽은 내용을 각자 프랑스어로 써보도록 주문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학생들은 자신들이 아는 단어에 상응하는 프랑스어 단어와 그 단어들이 어미 변화하는 이치를 스스로 찾아냈다. 그들은 혼자서 단어들을 조합하여 프랑스어 문장을 만드는 법을 익혔다. 더구나 그들이 구사하는 문장은 초등수준이 아니라 작가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는 의문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럼, 스승은 필요 없는 것일까?
  우리는 오랫동안 스승의 주요 임무는 자신의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설명을 통해 그들을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자크 랑시에르에 의하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한다는 것은 먼저 상대가 혼자 힘으로는 결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음을 전제하는 것이고, 잔인하게도 그 사실을 그에게 증명하는 것이다. 더구나 스승과 제자를 유식한 정신과 무지한 정신, 성숙한 정신과 미숙한 정신, 유능한 자와 무능한 자, 똑똑한 자와 바보 같은 자로 분할하는 것은 다만 교육학이 만든 신화일 뿐이다. 우월한 지능을 가진 스승이 열등한 학생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달한다는 기존의 ‘설명의 원리’는 자크 랑시에르에 의해 ‘바보 만들기’의 원리로 평가된다.
  보통 식견 있는 교육자는 ‘학생이 이해할까? 이해 못 한다면 그에게 설명할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 더 엄밀하면서도 더 흥미를 유발하는 그런 방식을. 그래야 학생이 이해할 수 있겠지.’ 라고 고민한다. 이 얼마나 고귀한 고민이란 말인가. 그러나 랑시에르는 식견 있는 자들이 쓰는 이 대수롭지 않은 단어, ‘이해하자’라는 슬로건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사람은 배우려는 의지가 있을 때 설명해주는 스승 없이도 혼자 배울 수 있다. 스승은 다만, 학생들의 지능이 책의 지능과 씨름하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인간정신의 고유한 힘을 믿고 학생을 설명의 방식에서 해방하는 것, 다시 말해 학생을 믿고 학생이 그의 지능을 쓰도록 강제하는 것만이 진정한 스승의 역할이다. 이때 학생은 스승의 설명에 기대어 피동적으로 ‘이해하’는 대신, 진정으로 깨닫고 홀로 ‘배우게’ 될 것이다.
  대학생쯤 되었으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성적과 두뇌를 동일하게 평가하고 계열화해 온 우리 교육환경에서 자란 학생들로선 갑자기 주어진 이런 학습의 자유가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자크 랑시에르에 기대어 자신을 믿고 모르는 영역에의 탐구에 과감히 도전하자. 우리는 혼자 익힐 수 있는 지능과 가능성을 가진 고귀한 존재임을 믿으면서.

 (마기영,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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