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쌍권총, 김상옥 의사

김상옥 의사,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김상옥 의사는 14세부터 낮에는 철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열의를 가지고 살았다. 1917년부터는 조선물산장려운동과 일화 배척운동을 전개하는 등 일제에 대한 저항과 꾸준한 애국활동을 하곤 했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은 1919년 3.1 운동 이후로 혁신단이라는 비밀 단체를 결성해 혁신공보(후에 독립신문으로 개제)를 발간해 독립사상을 계몽, 고취하도록 노력했다. 그 해 12월에는 암살단을 조직해 일본 고관 및 민족반역자에 대해 응징 및 숙청을 가하는 무력투쟁의 대표 인물로 우뚝 서게 된다. 이후 1920년 11월 김구, 이시영 선생과 독립운동 거사계획에 참여하는 동시에 김원봉을 단장으로 둔 ‘의열단’에 입단하게 된다.
  1923년 1월 12일. 이 날은 바로 김상옥 의사가 시행한 무장 독립운동의 대표 사건으로 꼽히게 되는 ‘종로경찰서 폭탄투척의거’가 일어난 날이다. 일반적으로 독립 운동가들이 항쟁에 사용하던 폭탄이 조잡했던 것과는 달리 종로경찰서에 투척됐던 폭탄은 위력이 대단했다. 투탄으로 종로경찰서 건물 일부가 파손됐고 행인 남자 6명과 여자 1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큰 소동이 일어났다. 주민의 신고로 김상옥 의사의 의거였다는 것이 탄로되고 총격전이 벌어지자, 총 두 자루로 종로경찰서 유도 사범이자 형사부장인 다무라를 사살하고 추격하는 일본경찰에게 사격을 가하며 옥상을 뛰어다니며 도주했다. 이 때문에 쌍권총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세 시간 반의 총격전 끝에 일본 경찰들의 수사망에 걸려 마지막 탄환 한 발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자결, 순국했다. 시신이 수습됐을 때 11발의 총상이 있었으며 천 여명의 일본 군인들과 총격전을 벌였다고 하니 가히 ‘전설의 쌍권총’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 하다.
  김상옥 의사는 국가보훈처에서 1992년부터 선정·발표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첫 번째로 선정된 인물이며, 누적 관객수 750만 명이 넘으며 인기를 끈 영화 ‘밀정’에는 김상옥 의사를 모티브로 한 김장옥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독립투쟁을 위해 평생을 살아왔고 타고난 리더십을 지녔으며 종로경찰서 의거의 성공으로 독립운동에 불을 집힌 인물이다. 수 천명의 군인들에게 대항할 정도로 남다른 배짱과 가히 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 실력을 지닌 비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말처럼 독립운동의 대표자였고 전설로 남아있을 김상옥 의사를 기억하며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려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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