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의 눈이 초승달이 되기도 하고, 보름달이 되기도 하고

드디어 재희는 궁동에 있는 자취방에 도착했다. 3평 남짓한 이 공간이지만 재희가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지켜오고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다. 이 공간을 사수하기 위해서 그 동안 참 힘들었다. 문득 지난 4년 6개월 동안 분투해왔던 기억들이 떠올라 한 편으로는 자신이 대견하고 한 편으로는 안쓰러워졌다.
 시윤과 만난 것은 한창 돈 문제로 힘들어 막 휴학을 했을 즈음이다. 식비나 생활비는 물론 집세와 전기세까지 다달이 내야했기 때문에 학업을 병행하기가 벅찬 상황이었다. 결국 6개월 동안 휴학을 하고 낮에는 카페, 저녁에는 고깃집, 주말에는 밤을 꼬박 새는 pc방 알바를 구했다. 시윤은 한창 재희가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고깃집에 신참으로 들어온 알바생이었다. 우연하게도 동갑이었고, 똑같이 oasis라는 밴드를 좋아했고,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좋아했다. 먼저 일을 시작했으니만큼 이것저것 알바에 필요한 조언이나 눈치껏 행동하는 법을 귀띔해주며 둘은 많이 친해졌다. 두 달 정도 같이 일하고 나니 잘은 몰라도 괜찮은 아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피크 타임대인 점심과 저녁 시간 사이에 짬이 나면 시윤은 이것저것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녀는 공대생이었고 성적도 꽤나 우수한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분야는 도자기였다. 광주의 왕실 도자기와 이천의 예술 도자기의 차이점을 설명하며 도자기 장인들이 삶을 꾸려가는 방법이나 작년 여름에 도자기 축제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 두 눈은 달빛을 담은 것처럼 빛났다. 하지만 그만큼, 그 애는 약간 자신이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그저 어색하고 서먹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저 잠자코 있었지만 손님의 주문을 자주 까먹고 실수를 자주하는 그 애를 사장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시윤이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설거지를 하거나 할 때 차가운 눈초리의 사장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조금 안 좋았다.
 시윤과 일한 지 3달째가 되던 어느 날, 문제가 일어났다.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대였고 가게에는 재희와 시윤, 사장과 사모님뿐이었다. 사장 부부는 가게에 손님이 한 테이블 밖에 없고 서빙까지 얼추 끝났으니 자신들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올 동안 계산을 하고 청소를 해 놓으라고 말했다. 둘은 평소와 같이 수다를 떨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사장 부부가 나간 지 십여분 후, 마지막 손님들이 일어났다. 재희는 계산을 하려 포스기 앞으로 갔고 시윤은 테이블을 정돈하려 물걸레와 분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충격적이게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계산대를 지나쳐 천천히 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나갔다. 둘 다 모두 얼이 빠져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가보니 그들은 이미 멀리서 뛰고 있었다. 그 순간 마치 복선을 떠올리듯이 그들이 식사 중에 미친, 아무도 없어? 집 가까운 사람 없어? 라고 저들끼리 수군거렸던 게 생각이 났다. 너무해... 재희는 울고 싶었다. 돈을 가지고만 온다면 기다려 줄 수 있었는데. 당신도 돈이 없지만 나도 돈이 없는데... 이런 식으로 5만원이 월급에서 까인다면, 겨우 그 5장의 종이가 없다는 이유로 적어도 재희의 한 달은 엄청나게 궁핍해질 것이었다.
 의외로 모든 일은 너무 쉽게 끝나버렸다. 상황을 파악한 사장이 시윤만을 타박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애만을 꾸짖는 근거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실상 이것은 피치 못한 상황이었음을 사장 부부가 알고 일을 곧잘 하는 재희 대신 맘에 안 드는 시윤을 내쫓을 구실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울먹이는 시윤의 모습과 손이 떨릴 정도로 아려오는 자신의 마음에 재희는 어쩔 줄을 몰랐지만 그녀는 자신의 집을, 생활을 지켜야했다. 그래, 결국 그렇게 영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시윤은 알바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고 재희는 휴학 기간인 6개월을 꽉 채우고 그 이후 2달 정도 고깃집에서 일을 하다 학업을 이유로 그만두었다. 그 노동의 결과로 자취방을 지키게 되었다. 대신 그 일은 간혹 생각나 마음이 슬퍼질 때가 있었다.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던 자신과 자신의 상황에 대한 원망과 함께. 그 애는 눈이 참 커서 종종 ‘보름달 눈’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럴 때면 시윤은 활짝 웃었는데 그러면 그 눈이 초승달같이 변했다. 이제 그 친구도 졸업했을 텐데.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아직도 그 친구는 도자기를 사랑하고 있을까. 아직도 달빛을 담은 초승달과 보름달 같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을까.

오유리(일어일문·3)
ur3980@naver.com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