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산문집 『연필로 쓰기』

『남한산성』, 『칼의노래』, 『공터에서』 등의 장편소설로 두터운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작가 김훈이 올해 초 낸 산문집이 『연필로 쓰기』이다. 김훈은 소설로 문명(文名)을 얻었지만, 심심찮게 수필도 쓴다. 『자전거여행』, 『밥벌이의 지겨움』, 『라면을 끓이며』와 같은 그의 산문집들은 소설 못지않게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매일 글을 읽고 글을 쓴다. 나는 책 한 권도 안 읽는데요?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핸드폰이 그야말로 ‘핸드’에서 떨어지지 않는 요즘, 우리는 SNS의 글을 읽고, 답글을 달고,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고, 유투브를 스캔한다.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 글에 노출된 이상, 기왕이면 좋은 글을 읽고 기왕이면 멋지게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연필로 쓰기』를 좋아할 것이다. 비평가들이 김훈 글의 특징으로 꼽는 것이 단문(短文)이라는 점이다. 늘어지는 문장이나 어려운 형이상학적 표현 없이 일상적 단어로 쓴 그의 문장들은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연필로 쓰기』에 실린 에세이들의 제목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어렵지 않은 글쓰기, 일상의 글쓰기를 하고 있는가 알 수 있다. 몇 가지만 살펴볼까. ‘밥과 똥’, ‘꼰대는 말한다’, ‘아, 100원’, ‘떡볶이를 먹으며’,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 어떤가, 벌써 책장을 펼쳐 얼른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가?
  서른다섯 개의 소제목들 중 가장 끌리는 것은 <아, 100원>이었다. 100원을 가지고 애지중지 혹은 안달복달하면서 어린 꼬맹이와 시시비비하는 김훈 ‘꼰대’의 일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상상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제목이 가볍다고 우습게 보는 것은 금물. <아, 100원>이라는 글 한 편을 다 읽고 나서는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반성과 결심 같은 것마저 솟아올랐다. 내용 일부를 인용해 본다.
  “……(음식배달)오토바이가 정차중이었고 뒤차도 속도가 낮았으므로 라이더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라이더는 구급차를 기다리며 가로수 밑에 주저앉아서 길바닥에 흩어진 짬뽕 국수와 단무지 조각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짬뽕 국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머리에서 피가 흘렀지만, 그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잘생긴 청년이었다. 길바닥에 흩어진 음식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고요했고 시선은 깊었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했는데, 생각이 되어지지 않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중략) 눈비가 오면 건당 100원을 더 준다는데, 100원을 더 주면 위험한 일을 시켜도 되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래서 김훈의 글이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가 드러나는 문장으로 평가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훈은 문학비평가 이어령으로부터 어휘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고, 페미니스트 정희진은 김훈을 일컬어 소설, 논픽션, 기사, 수필을 불문하고 모든 글을 잘 쓰는 예술가라 극찬했다던데. 과연 가벼운 제목과 짧고 쉬운 문장, 덤덤한 묘사 가운데 예리한 삶의 통찰이 빛난다. 어쩐지 이런 글을 자꾸 읽다 보면 언젠가 나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너무 시끄럽게 칭찬하지는 말아야겠다. 김훈은 이 책 서문에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 책의 출간으로, 나의 적막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전혀 바라는 바가 아니다.”라고 쓰고 있으니까. 예술의 본령인 무목적의 글쓰기, 철학에서 말하는 무관심성을 견지한 글쓰기가 김훈의 글쓰기이고, 그의 이런 문학과 삶에 대한 철학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 『연필로 쓰기』이다.    
                                                                              (마기영,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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