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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나는 기다린다, 고로 존재한다
충대신문 | 승인 2019.05.10 14:28|(1151호)
이군호 교수, 독어독문학과

기다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정말이지 기다리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누구 하나 그 뭔가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편물이나 버스를 기다리고, 친구나 연인을 기다리며, 주말과 합격과 당첨을 기다립니다. 자잘한 것에서부터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기다리는 것들은 거의 지구상의 사람들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뭔가를 기다리는 것이 정상이라고, 뭔가를 기다려야하는 법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기다림은 그래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존재의 한 바탕이 되는 듯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그 무엇도 기다리지 않는 사람, 기다릴 그 무엇도 없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답게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동물들도 뭔가를 기다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먹이를 구하고 집을 짓고 새끼를 낳고 키우는 등의 본능적인 욕구를 벗어난, 보다 ‘의미 있는 기다림’은 아마 인간만이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문제는 ‘의미 있는’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에도 차원이 있고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10초면 성취되는 커피자판기 앞에서의 기다림이 있는가 하면 10년의 세월로 채워지는 감옥 속 죄수의 기다림도 있고, 7년의 기다림 끝에 원하는 반려자를 만나는가 하면 70년 넘은 기다림도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민족통일의 염원도 있습니다. 기다림은 크고 작은 만남을 전제합니다. 만나고자 기다리는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이나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커피 한잔이 자유의 빛과 같을 수 없고,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 민족의 재회와 같을 수 없듯이 기다림의 의미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어서 우리의 기다림은 잠시의 기다림으로 끝나기도 하고 일생에 걸쳐 흔적을 남기기도 하며 세대를 거치며 계승되기도 합니다. 차창 밖 길거리 가로수처럼 휙휙 스쳐 지나가버리는 기다림도 있지만, 먼 산처럼 오래 머무는 인고의 기다림도 있는 법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수록, 기다림의 절실함이 깊을수록 기다림은 기대, 설렘, 희망, 꿈 등과 동의어가 되어갑니다.
  결국 기다림은 미래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이 없는, 기다림을 모르는 사람들이란 미래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는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날을 치열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지나간 과거를 동경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서는 대체로 체념입니다. 비전을 상실했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살고 과거에 집착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다분히 과거 회귀적 성향을 보이는 이들에게서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미래가 아닌 ‘과거를 기다리는’ 이들의 역설적인 삶은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눈앞의 즐거움과 이익을 가장 중시하며 사는 사람들은 ‘현재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일견 현실적으로 가장 재미나고 알차게 살아간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미래를 준비하는 커다란 그림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날을 내다보는 시각은 근시안적이거나 즉흥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기다림이 없지 않지만, 얕고 짧은 기다림으로 채워지기 십상입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미래로 충만하고 비전으로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과거에 연연하거나 현재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작은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꿈꾸고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꿈이 있고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건강한 활력이 넘쳐납니다. 이들은 희망으로 차고 넘쳐서 기다림을 망각한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퍼뜨려 기다림을 일깨워주는 이들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희망을 주고 기다림을 다시 가르쳐주는 손자손녀들. 꿈을 포기하고 기다림을 잊어버린 기성세대에게 꿈이 되어주는 젊은이들. 이들은 미래를 향한 기다림이 튼튼한 뿌리가 되어주어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꿈나무들입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꿈과 희망으로 충만한 ‘미래에 사는’ 사람이 되면, 그래서 기다리는 사람이 되면, 아이들이나 청년들과 같아지는 것 아닐까요? 늙었다고 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꿈꾸지 않는 자가 늙은 것이죠. 늙어서 기다림을 망각한 것이 아니라 기다릴 것이 없어서 늙어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위대하고 강력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 기다림은 얼마나 의미 있는 기다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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