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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일구벚꽃이 피었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평소에는 걷지 않는 길에 간다
충대신문 | 승인 2019.04.16 16:09|(1150호)

이윽고 4월이 되었고, 꽃이 피었다. 바람은 마치 감정들을 사포질하려는 듯 거칠게 불었다. 어린 시절부터 느끼고 모아왔던 감정들의 모서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마다 이렇게 허무하게 무뎌져갔다.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 사람의 인생은 스무 살 어른이 될 때 까지 무언가를 쌓고 나머지 시간 동안 그 것이 부식되는 것을 지켜보거나 혹은 직접 무너뜨리는 걸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고 재희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낮에는 봄바람에 나풀거리는 옷들을 입고 사진을 찍어대고 밤에는 벚꽃을 따라서 전등이 켜진 길을 걸으며 불꽃놀이를 구경하곤 한다. 그러나 그녀는 벚꽃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안다. 피사체가 되는 벚꽃은 절대 그런 모습을 할 수 없다. 더욱 밤이 깊어지면 하루 종일 피사체가 된 벚꽃에게서 사람들이 떠나가고 결국 벚꽃은 조금 지친 모습으로, 또는 외로운 듯 한 모양새로 홀로 남는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전등 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벚꽃의 모습보다도 밤바람에 외로이 흔들리는 이 벚꽃의 또 다른 모습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때 처음 안 사실이다. 1,2 학년 후배들과 시민들이 내내 벚꽃 구경을 하는 동안 수업을 듣고 자율 학습을 하고서 밤늦게 집에 돌아올 때 가끔 집에 걸어가기도 지쳐 벚나무에 기대어 앉거나 그 주위를 이유 없이 뱅뱅 맴돌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군중이 사라진 거리의 벚나무는 더욱 환하게 빛나며 왠지 재희의 외로움을 알아주는 듯했다.
 어쨌든 4월의 사람들은 벚꽃과 봄바람에 정신이 혼미해진 듯 더욱 더 다른 사람을 갈구하고 있었고 또 그게 그저 피상적이고 얕은 관계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더 씁쓸해졌다. 그래. 사실 나 이외의 사람을 어떻게 전적으로 신뢰하고 전적으로 사랑할 수 있겠어. 재희는 축 처진 마음으로 일찍 집에 돌아와 머리를 감았다. 욕조 바닥에 무엇인가가 눈에 띄었다. 벚꽃 잎 네다섯 장이 욕조 한 구석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이게 어디서 들어온 것일까 생각하다 욕조 창문을 내다보니 한 그루의 벚나무가 손을 내밀 듯 가지를 창문 쪽에 대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보니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맞느라 지친 벚나무들이 가지런히 서 있었다. 벚꽃은 낮과 사람들이 많았던 저녁에는 보이지 않았던 슬프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있었다. 너도 힘들었구나. 나도 낮에 참 힘들었는데. 너의 외로움에 나의 외로움을 기댈 수 있을까? 곧 재희는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외로운 바람이 찾아와 벚가지를 외롭게 흔들고 나는 가지가 흔들리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가뜩 벚꽃이 피어있는 뒤뜰에서 재희는 조금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재희는 곧 우뚝 서게 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그 곳에서 평온하고 조용히, 울고 있었다. 지금 이어폰으로 듣고 있는 음악이 너무 슬퍼서일까. 아주 오래 전의 슬픈 일이 떠올라서일까. 아니 그보다도,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슬픈 음악을 듣는구나. 또 과거의 사연이 있을 수 있겠구나. 외로움이 있구나. 나처럼 벚꽃의 외로움에 자신을 기대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구나. 갑자기 남들을 피상적인 사람들로 속단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동시에 동기와 선배들, 다른 사람들을 속단한 것에도 어쩐지 죄책감이 들었다. 서로에게 조금 더 마음을 열까 하다가도 금세 뒤로 물러나는 우리는, 서로를 가볍게 생각하거나 거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겁이 나기 때문에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닐까. 슬프지만 우리는 그저 밝았던 시절을 뒤로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고, 또 상처를 배우며 어른으로 자라오는 것이므로. 마음이 다치기 싫어서 몰래 숨기는 마음 속 깊은 감정은 그녀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것을 재희는 그동안 몰랐다. 졸업반이 돼서야 드디어 알았구나 싶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들 하지만 실은 사람 속도 한 길이 아니다. 오히려 열 길 백 길 이상이다.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기에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 함께 하며 야앵 아래서의 다른 표정도 보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와 어울리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종은 항상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외로움을 타인의 외로움에 기대려고 하는 게 아닐까. 재희는 가볍고 피상적인 관계라고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 것을 관계의 시작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올해도, 벚꽃이 피는 날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오유리(일어일문·3)
ur39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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