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메이, 김지선 역, 『사랑의 탄생』, 2016.

우리는 왜 사랑을 원할까. 우리는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질까. 때로 남들이 보기엔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왜일까. 사랑에 빠졌을 때, 한없이 포용적이다가도 이기심과 질투로 속을 끓이는 모순적 태도는 무엇 때문일까. 어떤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누구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랑의 특정 영역은 금지구역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에 대한 이 숱한 물음에 답하고 싶다면 사이먼 메이의 책 『사랑의 탄생』(사이먼 메이, 김지선 역, 문학동네, 2016)을 펴 볼 일이다. 저자는 ‘사랑은 생각이 아니라 느낌의 문제인지라 정의하기 어렵다’는 말로 책의 서문을 시작한다. 수수께끼 같은 사랑의 감정을 파헤치려는 모험 앞에서 저자 스스로도 많은 물음과 두려움이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저자의 지적 욕구와 깊은 천착은 책의 깊이를 확보하고 둘레를 넓힌다. 역사의 맥락 속에서 서로 다르게 사랑을 정의해 온 수많은 이들의 생각을 한데 모아 놓은 것만 보아도 사랑에 대한 그의 연구 열의를 짐작하고 남는다.
 저자 사이먼 메이는 신은 죽었다고 한 니체의 말이 틀렸다고 선언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신이 죽은 시대, 신의 자리를 대신한 새로운 신이 있었다. 완강한 무신론자마저도 빠져들게 만들고 마는 절대적 힘을 가진 새로운 종교,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책장을 넘겨 살펴보자. 플라톤은 『향연』에서 ‘사랑은 우리를 한 인간으로서 완전체로 만든다. 나는 내 반쪽이 없으면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며 사랑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사랑의 최고 형태로 꼽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되기를 빌고 잘해주는 것, 마치 자신의 제2의 자아인 것처럼 동일시하는 ‘필리아’는 그가 생각한 완벽한 사랑의 형태였다. 루크레티우스와 오비디우스는 사랑을 전적으로 세속적이며 물질적인 것으로 보았다. 특히 서양 최초의 사랑지침서인 『아르스 아마토리아』, 즉 『사랑의 기술』을 쓴 오비디우스는 여자들의 육욕이 남자들의 것보다 더 격렬하고 음탕할지도 모른다고 속삭인다. 스피노자는 이런 성적 욕망에 대해 적대적이다. 그것은 물욕이나 명예욕처럼 우리로부터 더 큰 행복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이 밖에도 니체, 루소, 쇼펜하우어, 프로이트, 프루스트 등 많은 철학자들과 음유시인들의 사랑에 대한 견해가 이 책에 소개된다.
 사랑에 관해 누가 한 말이 옳고 누가 한 말이 그른 것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지식과 정보는 자기의 선택과 판단에 따라 흡수되거나 걸러지고 버려진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한 사물 또는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립하고 이러한 것들이 누적돼 세계관이 형성된다. 판단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알기 위해서 읽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인 사랑에 대해 통시적인 동시에 공시적으로 훑어본 책 『사랑의 탄생』은 사랑에 관한 역사서이자 안내서이다. 요즘처럼 벚꽃 흐드러지면 혼자이기보다 둘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혼자일 땐 둘이 되기를 열망하지만, 정작 둘이 되면 가끔 혼자이고 싶어하는 것 또한 인간의 마음이다. 사랑 없인 못 산다고 노래하면서도 사랑때문에 죽는 것 또한 인간의 일이다. 이 봄이 가기 전에, 봄꽃이 다 져버리기 전에 사랑에 대한 이런 모순과 양가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사랑의 탄생』을 읽으면서.
                                                                              (마기영,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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