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시대

인문대학 고고학과 유용욱 교수

지금 현재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글 제목으로 주저 없이 답할 수 있다. 2010년대 대한민국은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고, 쉽게 믿으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남을 신뢰해서는 안 되는 사회, 항상 사사건건 검증하고 면밀하게 조사하고,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식으로 의심하고 비판하고 따지고 싸우듯이 달려들어야 한다. 그리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받아들이기 싫은 것은 절대 재고해서는 안 된다.
  상호신뢰가 없는 불신의 시대에서는 항상 타인의 평가와 판단을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쓸데없는 데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고, 기억하고 챙겨야 할 것들이 늘어나게 된다. 은행에 얼굴 내밀고 내 돈 맡기러 가도 신분증을 수십 번 보여주고 복사해야 된다. 대출을 하려면 국정감사 이상으로 서류를 요구한다. 인터넷 뱅킹으로 내 돈 관리하려고 해도 여러 가지 암호, 인증서에 각종 최첨단 보안 장치가 가로막는다. 그럼에도 뻥뻥 뚫리고 보이스피싱 당하고 내 돈은 남의 돈이 되어 돌고 돈다. 사람 냄새 나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 인문학을 육성한다는 기치는 높게 세우지만, 인문학 육성 사업에서 반드시 챙겨야 될 것은 페이지수로만 측정되는 사업 실적 보고서와 ‘술 안 먹은’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 회의비 영수증 등이다. 교수들이 수업 시간에 자신의 견해를 말하면 인터넷에서 구글링 한 내용을 들먹이며 가부를 판단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세상이 왔다. 이제는 수업 준비를 위해서 반드시 ‘네이버 지식인’이나 ‘나무위키’를 참조해야만 한다. 인터넷에 한줄 댓글은 믿어도 학생회의 사업 방침은 안 믿는다. 따라서 입학하고 총학생회비 내면 호구가 된다. 이제 축제 때 연예인 부르려면 총학생회는 새로운 수익 사업을 도모해야 하고 축제는 더욱 더 ‘도떼기 시장’이 될 것이다. 시험 문제와 점수를 공개하면 자신의 시험 준비 수준과 예상 학점은 믿어도 교수의 출제 의도와 채점의 공정성은 믿지 않는 학생들이 줄줄이 이의제기를 한다. 이제는 매 학기마다 똑같이 앵무새처럼 강의하도록 해 주는 대본, 아니 강의계획서와 강의평가를 학생들이 성적 챙기듯이 챙겨야만 한다. 타인의 추천서나 자신의 소개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하거나 아니면 표절의 산물로 취급 받기 때문에 휴지조각이 되 버리고, 대신 학점과 각종 시험 스코어와 자격증 등급과 각본 없는 연기 스킬인 면접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 진실한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처럼 보여 주는 게 더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불신의 시대에서 가장 가치 없는 단어는 공정성이 될 수밖에 없다. 공정성이 없는 사회에서는 노력의 대가가 주어지지 않고 성취감을 느끼기 쉽지 않다. 승자를 인정하고 동경하는 떳떳함보다는 시기하고 헐뜯는 옹졸함과 패자에게 값싼 동정과 낯간지러운 격려만 베푸는 해이함이 득세한다. 고유한 능력과 남다른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은 오히려 동기의 순수함과 노력의 진위 여부가 의심 받게 된다. 그리고 그가 이룩한 성취는 어느 새 격하되어 그만도 못한 사람들과 함께 공생공사하면서 하향평준화 되고 만다. 사회진화론적으로 적자생존과 우승열패라는 가치관은 정의롭지 않은 판단이요 정치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정서가 되어 버렸다. 경쟁 없는 호혜평등의 기치 하에 너도나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방식의 수준저하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불신의 시대는 어찌 보면 심각하게 암울한 시대라고 볼 수도 있다. 현재가 불신의 시대라는 불편한 진실 하에서 가장 쉬운 일은 편하고 재미있는 환상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불신의 시대에서도 꿋꿋하게 진정성과 정당성을 담보하려고 노력하는 소수는 있다. 그 소수는 바로 어느 누구도 안 믿어 주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믿고 자기 손으로 이룩할 수 있는 자신만의 미래를 믿는 사람들이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과 불평등은 절대 못 참는 대다수들은 남들도 나처럼 함께 망가지기를 바라던가, ‘아님 말고’라는 식으로 방관하면서 오늘도 정신승리하고 있다. 그러한 대다수에 잠식당하지 않는 소수는 요즘과 같은 불신의 시대에서도 번쩍번쩍 빛이 난다. 영어 단어로 ‘leap of faith’라는 용어는 믿음의 도약으로 번역되지만 ‘믿음 속으로 뛰어 든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일단 믿고 수행하는 것. 용단과 배짱과 기개가 더욱 필요한 시대가 바로 요즘과 같은 불신의 시대일 것이다.
  요즘 이러한 소수의 ‘leaper of faith’들이 발산하는 빛이 내 눈에 자꾸 들어오고 있다. 작게는 우리 과에서, 좀 더 확장해서 우리 학교와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불신의 시대일수록 스스로를 믿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나 과소평가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학생들을 여럿 봐 왔다. 이들에게 비록 ‘꼰대’ 소리 들을 각오하더라도 “나 때도 너 같은 애들이 결국 끝까지 견디고 이뤄 내더라!” 라는 말로 안심시켜주고 믿음을 주고 싶은 게 사실이다. 자신을 믿고 운명을 믿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이끌어 내는 것은 타인의 신뢰이다. 이러한 소수의 믿는 자들이 궁극적으로 대다수를 압도한다는 데 바로 역사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과거에도 불신의 시대는 항상 있어 왔다. 때로는 혁명, 때로는 전쟁 등의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대부분 소수의 믿는 자들이 결국은 불신의 시대를 종식시켜왔다. 왠지 내 눈에 자꾸 밟히는, 믿음과 신뢰로 가득 찬 소수의 학생들이 결국은 이 불신의 시대를 새롭게 바꿀 것으로 내 자신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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