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의미부여

‘혼날 때 공감’이라는 글을 봤다. 부모님에게 꾸중을 듣고 있을 때 바닥무늬를 곰곰이 보게 된다는 글인데, 꽤 공감을 산 글이다. 우리는 평소에 바닥을 볼 일도 없기에 바닥의 무늬에 딱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물론 바닥이 의도를 가지고 특정 문양을 넣은 것이 아니면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어떤 물건, 문구, 사람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던 특징과 의미를 알게 된다. 다시 본다는 말이 이런 건 가 싶다. 
  내가 계절학기 수업을 들을 때는 세종에서 통학을 했다. 세종에서 우리 학교로 오는 길에 지하철을 타면 유성온천역에서 걷거나 월평역에서 버스를 타는데, 보통은 유성온천역에서 운동 삼아 걷는다. 그날도 유성온천역에서 내리려는데, 지하철에서 졸다가 유성온천역 직전역인 구암역에서 잠을 깼다. 유독 졸려 잠을 깨려 아무 곳이나 노려보다 구암역의 역명을 쳐다보니, ‘guam’ 미국령 괌과 철자가 같은 것이다. 졸음을 살짝 털 정도로 헛웃음이 나오는 우연이었다. 미국인들이라면 어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날은 인터넷 뉴스를 읽을 때였다. 등록금 관련 기사였던가. 표에 xx대학교가 가득한 그런 기사였다. 대학교, 대학교, 대학교, 대학교, 대학교 일색인 표를 읽다 나는 잠시 대학교라는 단어에 대해 피로감을 느꼈다. 물론 ‘대학교’라는 단어가 1000페이지 두께 전공서적의 864페이지쯤에 언급되는 공학현상도 아닐 테고 그에 갑작스레 혼동과 피로감을 느끼는 게 이상한 일이긴 하다. 실제로 이런 현상이 게슈탈트 붕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정식 심리학 용어는 의미 과포화이다). 이런 현상을 느껴보고 싶다면 동일한 단어가 가득한 기사나, 라임 살리기를 좋아하는 래퍼의 가사나, 시인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읽어봐도 좋겠다.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자동기술법으로 쓰여 그 현상을 느끼기 쉬울 것이다. 머리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전공서적들은 반복과 착시, 그리고 특이한 말장난이 없이도 나를 피로감과 혼동에 묶어 둔다. 이건 또 다른 의미 과포화일까.

우재하 (항공우주·3)
인스타 @woo_j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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