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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자국을 남긴 여성인물이름모를 여자를 상상한다
충대신문 | 승인 2019.01.03 15:26|(1147호)

아무도 없는 교실에 앉아있었다. 밖에는 버려진 문제집이 산더미였다. 문제집이 태워지는 냄새가 났다. 이제 학교에서 할 일이 남지 않았다. 끝났다는 생각에 미치자 이름 모를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었다. 공책을 쭉 찢어서 잘 보이도록 책상 서랍 한가운데에 접지 않고 넣었다. 그가 쪽지를 발견할 수 있을지, 아무도 보지도 않고 쪽지가 벼려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설레었다. 학교에서 느낄 일이 없던 감정이었다.
  친구는 분명 내가 고등학교 시절을 잘 보냈다고 했다. 내 기억으로 학교는 끔찍한 곳이었다. 교사는 여학생들 앞에서 매일같이 폭력적인 말을 내뱉고 야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아침 여덟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교실에 갇혀있었다. 내가 잘 지냈다고? 어떻게 잘? 원하는 일을 찾는 방법보다 하기 싫은 일을 참아내는 방법을 배운 곳이다. 참다 보니 맷집이 생겨 그럭저럭 버텼던 건데. 버티는 모습이 잘 지내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런 식으로 친구들도 시간을 참아냈던 게 아니었나. 쪽지는 이 책상에 앉을 새로운 학생이 학교를 잘 참아내길 소망하면서 쓴 거였다. 간절하겠지만 간절함도 유효기간이 있다고. 시간은 빨리 흘러서 사물함에 모아둔 책을 태우는 날이 곧 올 거라고.
  이름 모를 그가 이 책상에 앉아 쪽지를 발견해내는 상상을 하는 건 학교생활을 마무리하는데 도움이 됐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몇 달 전, 쪽지를 두고 나온 여고의 스쿨 미투 소식을 들었다. 내가 상상했던 그들이 말을 했다. 그들의 고백은 내가 겪은 경험과 닮아있었다.
  학교를 벗어나도 견뎌내야 하는 일은 줄지 않았다.
  여전히 이름 모를 여자를 상상하면서 산다. 10년 후에 이 자리에 있을 그가 어떤 일상을 마주할지 상상하면 지금을 마무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금의 여자들이 외치는 말이 몇 미터 못 가 모두 떨어져 버리는 것 같아도, 떨어진 말들이 주워지는 날이 있을 거라고. 말들이 앞으로 움직이는 날이 올 거라고. 전혀 변하지 않는 미래와 무엇이라도 변할 미래를 동시에 본다. 내가 지금 느끼는 무력감은 백 년 전 먼 나라에서 쓰인 책에서 찾아볼 수 있고, 이십 년 전 엄마의 일기장에서도 읽을 수 있다. 동시에 내가 사는 이곳은 여성이 재산을 가질 수 있고, 서가에 많지는 않지만 여성 작가의 책들이 늘었다. 이제는 아이는 어머니의 성을 가질 수 있다.
  지난 해를 상상과 함께 살아냈고, 다가온 해에도 새로운 상상으로 삶을 꾸린다. 네가 그리는 세상이 올 수 있을 거라고 믿느냐고, 그 믿음은 절대 변하지 않는 거냐는 물음 앞에 그 여자가 어딘가에 있다고. 우리가 보낸 말을 받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내는 여자가 저기 앞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BOSHU 에디터 김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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