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무산되기는 했으나 지난 3월 발의된 헌법 개정안은 지방분권·지방자치가 이미 주된 흐름으로 넘어왔음을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다. 지방색·지역 특색을 강조하는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학교가 있는 대전·충남지역을 살펴봤다. 어떻게 하면 이 무채색의 도시, 특색 없는 지역에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를 내세워 세계적인 문학 관광지로 거듭난 스트랫포드가 좋은 답안이 될 수 있다. 양식 있는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친숙할 문학작품 네 편으로 대전·충남의 매력을 전하고자 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  우는 곳,
  ㅡ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① 정지용과 「향수」
정지용은 1902년 충청북도 옥천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9세 때 옥천공립보통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여 17세 때 서울 휘문고등학교로 진학하기까지, 유년 시절을 고향 옥천에서 보냈다. 향수는 1927년 정지용의 일본 동지사대학 유학 시절에 『조선지광』을 통해 발표한 시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을 잃어버린 슬픔을 노래한 시로 정지용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②「향수」로 읽는 옥천
정지용은 향수를 통해 고향 옥천을 그린다. 시에서 옥천은 평범한 농촌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얼룩백이 황소가 울음을 우는 일반적인 한국적인 농촌의 모습이 제시돼 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누구나 고향을 잃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향수」는 그런 상실감과 비애감을 고향 옥천에 대한 묘사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것이다. 작품 속 실제 옥천은 아름다운 풍광은 물론이고 포도가 유명한 지역이다. 대전에서 시내버스로도 이동할 수 있으니 이번 주말에 나들이 가보는 건 어떨까?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① 신동엽과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은 1930년 충청남도 부여읍 동남리에서 태어났다. 부여국민학교와 전주사범학교를 거쳐 교사가 됐으나 곧 그만둔다. 1949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듬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갖은 고초를 겪는다. 전쟁이 끝난 후 명성여고 교사로 근무하던 중 1967년 1월 《52인 시집》에「껍데기는 가라」를 발표한다. 이 시는 반제국주의와 분단 극복의 단호한 의지가 응집된 참여시의 절정으로 평가받는다.
  ②「껍데기는 가라」 로 읽는 공주
신동엽은「껍데기는 가라」로 공주의 동학농민운동, 4·19 혁명을 연결 지으며 언젠가 찾아올 남북통일을 보여준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는 한국의 민주정치를 암흑기로 몰아넣었다. 군사정권은 반공주의를 빙자하여 정치적 경쟁자들을 제거했으며, 문학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비록 「껍데기는 가라」는 출판되자마자 금지당했으나, 공주의 동학운동과 4·19 혁명을 완성하기 위한 다음의 과업으로 남북통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한때 혁명의 아우성이 가득했던 공주는 지금은 밤을 많이 재배하는 것이 특징인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밤 수확기인 9~10월에 공주를 방문한다면 맛있는 밤을 먹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운 난세일수록 유언비어가 난무함이 예사이고, 말을 않으면 병신 대접받기 십상인 줄 모르지 않으나, 주체의식이나 주체성이란 말을 외래어보다도 막연하게, 개나 걸이나 지껄여대지 않으면 행세를 못 하는 줄 알던 많은 사람을 보아온 터여서, 그 천한 말을 옹점이는 일찍이 내게 행동으로써 보여준 셈이라고 장담하게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① 이문구와 「관촌수필」
이문구는 1941년 충청남도 보령군 대천면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한국전쟁으로 아버지와 형들을 잃고 소년 가장이 됐다. 1959년 대천중학교 졸업 후 막노동과 행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 후 등단하여 작가 활동을 시작한다.「관촌수필」은 1972년에 시작하여 1977년에 마무리한 연작소설이다. 작가의 추억을 통해 사라져 버린, 혹은 사라져 가는 전통적인 고향의 풍경과 정서를 그 특유의 토속어로 포착해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②「관촌수필」로 읽는 보령
「관촌수필」은 자전적 성격의 소설이다. 1961년 군사쿠데타 후 반공주의가 한국사회의 주요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게 되자 이문구는 연좌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전쟁으로 희생된 그의 부친은 남로당 보령지역총책이었기 때문이다.「관촌수필」에는 이러한 집안의 내력을 통해 전쟁의 고통을 보여준다. 또한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년 시절 친구 옹점이를 등장시켜 이토록 혼란스럽고 각박한 세상에서 참된 인간상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좌우대립으로 혼란스럽던 보령 또한 지금은 아름다운 바다를 내세운 관광산업이 발달한 평화로운 마을이다. 특히 7월의 머드축제와 머드화장품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충남대학교 임해수련원은 충대인 모두에게 개방된 곳이니 방문을 권하고 싶다.

  아이들의 등 뒤에서 이 정경을 바라 보던 영신은 깨물었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영신은 그 눈물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돌아섰다. 한참이나 진정을 하고 나서는 저희들 깐에도 동무들을 내쫓고 공부를 하게 된 것이 미안쩍은 듯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앉은 나머지 여든 명을 정돈시켜 놓고 차마 내키지 않는 걸음걸이로 칠판 앞으로 갔다.

  ① 심훈과 「상록수」
심훈은 1901년 서울 영등포구 노량진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대섭’이지만, 필명인 ‘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15년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고등보통학교를 다녔으나,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된 후 퇴학당한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저우 치장대학에서 공부하다가 1923년 귀국하여 연극·영화·소설 등에 몰두한다. 「상록수」는 1935년 9월부터 1936년 2월까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되어 연재한 소설이다. 젊은이들의 희생적인 농촌사업을 통하여 강한 휴머니즘과 저항 의식을 고취한 것으로 유명하다.
  ②「상록수」로 읽는 당진
심훈은 잠시 기자로 활동하다가 1932년 부모가 있는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하여 창작활동에 매진한다. 당시 심훈의 장조카 심재영은 부곡리에서 12명의 젊은이와 농촌 야학을 운영하며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심훈은 이를 높게 평가하였고, 1935년 경기도 반월면 샘골에서 농촌계몽운동 중 사망한 최용신의 이야기를 연결하여 「상록수」를 완성한다. 1930년대는 일제의 본격적인 대륙침략으로 국내에서의 학생운동과 독립운동이 어려워진 때이다. 이에 학생들은 농촌계몽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활로를 모색했다. 「상록수」는 고난의 시대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헌신적인 의지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보여준다. 「상록수」의 배경인 당진은 매년 9~10월 심훈 상록문화제를 개최한다. 심훈 작가를 추모하고 상록수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이니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뜻깊은 추억이 될 것이다.
  문학관광은 더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하게 성공한 사례가 있으며, 국내에도 「토지」의 경상남도 하동, 「메밀꽃 필 무렵」의 강원도 봉평이 있다. 대전·충남을 배경으로 하는 친숙한 문학작품을 통해 바라본다면 우리 사는 지역이 좀 더 매력적인 멋진 공간이 되지 않을까? 앞서 상술한 문학 작품들은 현재 충남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모두 소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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