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얻는 일

나꼼수가 ‘한 번쯤 들어봐야 하는 교양 프로그램’이라고 불릴 때, 비키니 입은 여성이 그들을 응원한다고 올린 사진이 화두에 올랐던 적이 있다. 그 사건을 기억하는 건 전공 수업에서 교수님이 던졌던 한 질문 때문이다. 교수님은 과에 몇 안 되는 여성 교수님이고, 수업에서 종종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사회 이슈를 풀어내셨다. 그 여성은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 응원 사진을 올렸다고 한다, 그걸 비판해볼 수 있겠냐는 질문. 몇 십초의 정적이 지나는 동안 교수님은 강의실을 둘러보며 학생들의 답변을 기다렸다. 순간 머릿속은 여러 말이 지나갔다. 그런 순간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교수님이 던진 질문과 다음 말 사이는 자주 공백으로 채워졌고, 그 사이 내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바빴다. 이쪽과 저쪽을 재보고, 당연하게 생각하던 의견을 부숴보고, 새로운 정의를 내려보았다. 열 내며 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속이 허기졌다.
  지금에야 교수님이 던진 질문에 몇 마디라도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본인이 원했다고 사진을 올렸다고 했지만 비키니 사진은 철저히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남성이 보기에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그 녀에게 비난을 던진 사람도, 사진을 보고 즐긴 사람도 남성이었는데. 그녀가 자라온 환경이 어땠을지를 생각한다면 본인만의 자유 의지로 보기 어렵고, 여성만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문제일 텐데. 비키니 몸매, 다이어트 강박, 성형수술 등을 여성이 스스로 원하는 것처럼 보이게하고 (예로 20대 여성에게 가장 인기 있는 블러셔), 결국 그녀의 문제로 만드는 것은 명품 화장품에 환장하는 김치녀의 경우처럼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비약이다. 교수님은 그걸 내게 말해주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정적이 흐르던 강의실을 가끔 회상한다. 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 왜 어떤 학우도 입을 떼지 못했을까? 그때 교수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 강의실이 처음이었던 일은 이렇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적힌 논문을 읽은 것, 똑똑해서 부러운 사람이 강단에 서있는 장면을 목격한 것, 일상에서 젠더 문제를 꼬집어내고 논리를 쌓는 연습을 한 것. 그 처음들 덕분에 같이 페미니즘을 공부할 사람들을 만났고, 그 이야기를 모아 잡지를 만든다.
  매일 분노하게 만드는 일을 만난다. 지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그에게 얻은 것과 그의 존재를 기억한다.

BOSHU 에디터 김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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