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눈 깜짝할 새 끝났다.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지만, 고된 여름이 끝나고 가을을 만끽할 수 있어 두렵지는 않다. 독서의 계절, 문화의 계절로 표현되는 가을, 이번 가을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 익숙하지만 어렵게만 느껴졌던 클래식, 영화 속 클래식과 이야기가 있는 클래식으로 더 쉽고 재밌게 피아노의 매력에 빠져보자.

 

테마가 있는 클래식. 영화 속 피아노곡

‘어? 나 이 곡 많이 들어봤는데? 이름이 뭐였지?’
영화를 감상하다 흔히 겪는 일이다. 영화 속 명장면에 등장하는 피아노 선율은 장면을 극대화시켜 몰입과 감동을 끌어내기도 하고, 백 마디 대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무심코 지나쳤을 음악. 영화 속에 등장해 장면을 돋보이게 했던 음악을 통해 몰랐던 아름다움을 발견해보자. 

Debussy - Clair de lune
  ‘달빛’으로 알려진 이 곡은 CF,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에서 사용되는 명곡으로, 영화 ‘트와일라잇’의 주인공이 같이 춤을 추는 장면과 ‘오션스 일레븐’의 마지막 부분에 삽입됐다. 게임 ‘포트나이트’의 광고 영상에도 삽입됐다.
  ‘Clair De Lune'은 인상파 작곡가에 속하는 드뷔시의 ‘베스가마스크 모음곡’ 의 세 번째 곡이다. 베스가마스크 모음곡은 드뷔시가 베스가마스크 지방을 여행하며 영감을 얻고 작곡한 모음집이다. 특히 'Clair De Lune'은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화음으로 달빛어린 분위기를 표현하는 곡이다.

Chopin - Ballade No.1 G Minor
  발라드란 시를 노래하기 위한 음악으로, 이 곡은 쇼팽이 작곡한 네 개의 발라드 중 가장 대중적인 곡이다. 폴란드 피아니스트 슈필만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쟁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작중 슈필만이 독일군 장교 앞에서 연주한 곡으로, 추위와 배고픔에 꽁꽁 언 손으로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를 연주하며 2차대전 당시 유대인의 비참함을 나타내는 극적 장치로 사용되었다.
  쇼팽의 고향인 폴란드가 러시아에게 침공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쇼팽은 분노와 상실감에 빠져 지낸다. 그러던 중 쇼팽은 1825년 폴란드의 시인 미츠키에비츠의 애국시 ‘콘라드 와렌로트’에서 영감을 얻어 이 곡을 작곡하게 됐고, 슈만은 ‘그의 천재성에 가장 근접한 곡’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G단조의 도입부와 장조와 단조를 넘나드는 극적인 전개는 쇼팽의 고독과 슬픔, 애국심을 엿볼 수 있다.
 

Chopin - Piano concerto No.1 - Romance(Larghetto)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 1번 2악장이다. 영화 ‘암살’에서 작중 하정우와 전지현의 첫 만남에 잔잔하게 깔린 곡이다. 피아노 협주곡이 작곡될 무렵, 열아홉 살의 쇼팽은 성악가 콘스탄치아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다. 결국 쇼팽의 짝사랑으로 끝이 났지만, 처음 느껴보는 사랑의 감정이 이 피아노 협주곡에 스며들게 된다. 쇼팽의 이 은밀한 고백은 오직 그의 절친한 친구 티투스만이 알고 있었으며, 콘스탄치아는 쇼팽 사후 쇼팽 전기가 출판되자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로망스(Romance)라는 타이틀을 가진 2악장은 우아한 녹턴풍의 음악이다. 음악에서 로망스는 낭만적이며 서정적인 곡을 의미하는데, 이 2악장은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야 하는 심정과,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콘스탄치아에 대한 애틋함이 함께 그려진, 예민한 감수성의 쇼팽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가 있는 클래식, 음악가가 사랑한 여인들

알고 나면 더 재미있는 클래식. 클래식 음악사에서도 음악가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있다. 음악가들은 서로의 뮤즈가 되어 사랑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는데,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처럼 은밀한 고백이 담긴 곡도 있고, 리스트나 슈만의 곡처럼 사랑을 노래하는 음악도 있다. 이야기를 알고 나면 더 낭만적인 음악. 눈으로 함께 음악을 감상하며 아름다움과 사랑에 빠져보면 어떨까.
 
  Liszt-Liebestraum No.3 (사랑의 꿈)
  잘생긴 얼굴과 큰 키,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수많은 여성 팬들을 거느린 ‘원조 아이돌 스타’인 리스트에게는 늘 많은 여성팬들이 따라다녔다. 리스트와 눈만 마주쳐도 기절하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그가 피우다 버린 담배를 가지려고 달려드는 여성도 있었다. 리스트는 러시아에서 최후의 공개 연주회를 가진 후 필생의 여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을 만나게 되는데, 급속히 가까워진 그들은 바이마르에 정착해 사실혼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그녀를 만나고 리스트는 시인 프라일리히라트의 시에 곡을 붙여 ‘사랑의 꿈’이라고 불리는 3개의 가곡을 쓰게 된다. 그 후 3개의 가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해 ‘3개의 녹턴’이라는 부제를 붙이게 되는데, 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3번째 곡인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이다. 시의 내용을 기억하며 리스트와 비트겐슈타인의 사랑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하고 싶은 한. 시간이 오리라.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Schuman - Widmung (헌정)
  슈만은 은사의 딸이자 유명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와 사랑에 빠졌으나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슈만의 스승인 비크가 두 사람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한다. 소송까지 진행한 끝에 결국 둘은 결혼에 성공하고 클라라는 슈만의 영원한 뮤즈가 되는 이야기는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랑이야기일 것이다.(클라라와 슈만의 사랑은 슈만의 제자 브람스와 클라라의 사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헌정은 뤼케르트의 시에 슈만이 곡을 붙여 만든 가곡으로 그의 가곡집 “미르테의 꽃” 중 첫 번째 곡이다. ‘헌정’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는 아버지의 오랜 반대 끝에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와 결혼하기 하루 전날 그녀에게 이 곡을 바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슈만의 친구였던 리스트가 이 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했으며 현재는 리스트의 편곡이 널리 연주되고 있다.

  Brahms - Intermezzo Op 118 no. 2
  클라라가 사랑한 슈만,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 작곡가들의 많은 러브스토리 중 브람스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한 여인을 평생 바라본 작곡가는 거의 없다.
  슈만의 정신질환이 악화될 무렵, 브람스는 동경하던 음악가인 슈만의 제자가 된다. 브람스는 아픈 슈만을 대신해 슈만의 아이들과 클라라를 돌보는데, 브람스는 14세 연상이었던 클라라를 사랑하게 된다. 슈만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을까? 슈만이 죽기 직전 남긴 “알고 있어”라는 말은 마치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는 것 같다. 그러나 슈만이 죽고 난 후 둘의 관계는 발전하지 않는다. 클라라는 슈만을 잊지 않고, 브람스도 슈만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 곡은 1895년, 브람스가 클라라를 찾아갔을 때 클라라가 오직 그를 위해 연주했던 곡이다.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연주를 부탁했을 때, 거절 끝에 마침내 그의 피아노 작품 op.118을 들려주었다. 브람스가 그녀의 주름진 손을 잡아주자 클라라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모르고 지나치면 꽃도 그저 풀일 뿐이고, 꽃말과 함께 감상하는 꽃은 더 아름다워 보인다. 어디선가 음악이 흐르고 있을 일상의 아름다움에 귀 기울여 보자. 음악 속에 담긴 이야기와 함께 음악을 감상해 보자. 클래식은 멀지 않다. 내 인생의 영화에는 어떤 음악이 흐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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