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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자국을 남긴 여성인물나의 선생님이 되어주세요
충대신문 | 승인 2018.09.07 11:11|(1142호)

  내게 ‘선생님’은 여자다. 똑같이 학교에 돈을 기부해도 남자는 선생님, 여자는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세상이래도 그렇다. 내 삶에 유의미한 자국을 남긴 사람들은 대개 여성이었다.
  화가 나는데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모르겠고 이 화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이 안 올 때, 내 입에 새로운 말을 옮겨준 건 앞서 목소리를 냈던 여성들이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여성들을 선배라고 여기며 그들이 창조한 말을 참조했다. 내가 나를 지겨워해 매사에 심드렁할 땐, 앞에 선 여자의 신중한 목소리와 총명한 눈빛을 세례처럼 받으면서 의욕이 솟기도 했다. 앞이 깜깜하고 말이 막힐 때마다 여자의 말과 글을 찾는 것은 내게 언제까지나 참신하고 유효할 삶의 방편이다.
  지났는지 안 지났는지 모를 이번 여름엔, BOSHU팀원들과 함께 페미니즘 글쓰기 수업을 기획해 들었다. 강좌의 제목은 ‘부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뒤 글쓰기’다. 부감의 시선을 갖는 건 아무에게나 가능하지 않은 미션이다. 우리는 소설가, 여성주의 활동가, 기자, 영화 프로그래머 등 각자 집중하는 분야가 다르면서도 자신의 관점을 근면하게 손보며 살아가는 선생님들을 모셨다. 일곱 번의 특강을 듣는 중에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노트에 적었는데, 손을 움직이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안타까울 정도로 밀도 있고 고유한 수업이었다.
서른 명쯤 되는 수강생들은 매주 평일 저녁 시간을 내서 강의를 들으러 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선생님과 무언가 주고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성 작가와 여성 수강생. 나는 그들을 번갈아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찰랑찰랑해졌다. 우리는 서로, 모르지만 안다. 어떤 텍스트를 보면서 동시에 비웃고 다른 텍스트를 읽으면서 ‘아…!‘한다. 선생님은 수강생의 태도를 믿으려 하고 수강생은 선생님의 의도를 믿으려 한다.
  어제의 수업을 떠올린다.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텍스트 읽기> 수업에서 이민경 작가는 소설가 김훈의 ‘언니의 폐경’ 일부를 읽어 주었다. 요약하면 남자가 쓴 생리 이야기이고 한 대목을 대충 빌리면, “얘, 내 몸이 왜 이러지. 뜨거운 것이 밀려 나와.”라고 말하는 언니와 그 말을 듣고 여동생이 손톱깎이를 꺼내 팬티를 잘라내는(왜죠?) 핍진함 '0'에 개연성 밥 말아 먹은 이야기인데 아무튼 엉터리 소설보다는 작가와 수강생의 교감이 중요하다. 작가는 말했다. “이 글이 왜 웃긴지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요. 그렇죠?” 우리는 눈을 맞추고 웃었다. 사이에 두려움이나 자기검열이 낄 자리는 없었다. 나는 웃음의 의미를 알았다.

서한나 (BOSHU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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