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권하는 사회

  요즘 대학들마다 학부생 취업 상담 업무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어떤 대학은 전담 교수까지 채용하여 취업 업무를 맡기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에서 취업 관련 업무는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대학이 학사 관리에만 신경을 쓰면 취업은 학생이 알아서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등 인력의 공급과 사회적 수요가 미스매칭 되면서 대학이 학생들의 취업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대학도 달라진 셈이다. 특히 인문 계열 학생들이 처한 취업과 관련된 현실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인구론’(‘인문 계열 대학 졸업자들의 90퍼센트가 논다)이라는 아주 기발하고 창의적인, 그래서 뒷맛이 더 씁쓸한 우스갯소리가 유행하기도 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직업분야는 두 말할 것도 없이 공무원이고, 당연히 그 중 다수가 국가직, 혹은 지방직 9급 공무원이다. 졸업 전에 공무원 시험에 꼭 합격하고 싶어 휴학을 선택하려 한다는 학생, 학과 수업은 출석에만 의의를 두고 이미 공무원 공무에 매진하는 학생,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으니 학과 수업은 대충하더라도 양해해 달라는 학생,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졸업하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학생 등 공무원을 진로로 선택한 학생들의 천태만상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듯하다.

  대학생들이 공무원이라는 진로를 선호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무척 혼란스럽다. 재학생 다수가 졸업 후 공무원을 하겠다는 학과는 이미 그 존재 의미를 상실한 학과가 아니던가. 이런 대학, 이런 학과가 앞으로 존속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이 학과 학생들은 왜 이렇게 진취적이지 못할까. 아니다.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도, 삼성을 다니던 사람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9급 공무원 시험을 보는 시대가 아니던가. 공무원이야 말로 이 야박하고 계산적인 세상에서 비교적 덜 핍박 받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직종이 아니던가. 요즈음은 대기업 사위보다 공무원 사위를 더 선호한다고 하지 않나.

  언어 능력과 학점이 모두 우수한 학생이 공무원을 하겠다고 하면, 똘똘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놔두고 모두 공무원이 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국가적 손해이다. 학생들은 아무리 잘 나가는 회사라도 대기업에 입사할 것인지 지방 공무원을 할 것인지 중에서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게 공무원을 택한다. 왜 굳이 대기업보다 공무원인가? 대기업 직원을 경험해보지 않더라도 횡행하는 ‘갑질’과 일반화된 ‘명퇴,’ 그리고 일상화된 야근 등 사기업 월급쟁이들의 고된 삶을 떠올리는 듯하다. 신문지 상에서 익히 보고 듣고 있지 않은가. 그런 기업주를 위해 일하면서 월급을 조금 더 받은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야말로 또 다른 형태의 심각한 두뇌유출이다.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변해야 한다. 언제까지 인문 계열 학생들을 공무원 시험장으로 몰아넣을 생각인가? 민간기업들은 언제까지 직원을 자신의 부를 늘리기 위해 존재하는 소모품으로만 볼 것인가? 말로만 떠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 채용 확대는 언제 현실화될 것인가? 민간기업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언제 공무원 수준이 될 것인가? 모두 방향은 알지만 갈 길은 너무나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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