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비논리적으로 살아보기”

구나현 기자(문헌정보·2)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틀을 정해놓고 그것을 엄격하게 지킨다. 그걸 신념이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개인의 성향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관성적으로 그 틀에 맞춰 살고 그걸 편하다고 생각하며 지켜왔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그 틀이 버거워 틀을 깨버리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기자는 자기 자신을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을 좋아해서 사람들과 같이 다니는 게 기자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사람들과 같이 다니지 않는 상황이 되자 더 참을성 있고 용감한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사람들과 함께일 때, 기자의 약하고 아기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그래서 남들과 함께할 때보다 혼자 다니는 게 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평생 알던 모습의 기자와 다른 모습의 기자로 사는 것도 틀을 깨는 것 같아 재밌고 즐거웠다.
  기자의 선택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기자가 시간과 돈과 감정과 체력을 낭비하지 않을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길 바랐다. 타이밍이나 상황을 따지는 건 비겁하고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스스로가 잘못한 것과 남이 잘못한 것 이렇게 두 가지로 양분되는 듯했다. 기자를 탓해야만 문제의 원인 분석을 제대로 하는 것만 같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기자의 능력이, 노력이, 준비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자나 남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잘 안 된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책하거나 남을 탓하는 일이 줄었고, 마음을 좀 더 편하게 가질 수 있게 됐다.
  기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도 결과가 나기 전까지는 해왔던 것을 돌아보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탓해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부러웠던 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종교를 믿지 않는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힘들 때 종교에 의지할 수 있는 종교인들이 부러웠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친구들은 열심히 시험 준비를 했음에도 시험 보기 전에 기도를 하곤 했다. 그것처럼 기자에게도 항상 행운이 따를 거라 믿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안일해져서 노력을 안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좀 더 편하게 지켜볼 수 있고 결과가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다음 번엔 더 좋을 거야’, ‘다른 건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뿐이니깐 말이다.
  논리에 맞지 않아 보여도 그렇게 믿어서 기자의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다면 그것들이야말로 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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