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지만 우리가 하려는 것

  이렇게까지 졸렬하고 유치할 수 있구나. 누군갈 보며 이렇게 멋질 수도 있구나 감탄하는 일도 가끔 벌어지지만 그보다 나를 더 자주 감탄시키는 건 그(남)들의 졸렬함이다. 5월, BOSHU는 여성 주짓수 원데이 클래스를 열었다. 모집 하루 만에 50명이 신청했다. 참가 확정을 위해 연락을 시작했는데, “이 번호 없는 번호라는데요?” 서른 다섯 명의 번호가 틀린 번호였다. 신청이 언제 마감됐냐며 문의를 하던 이에게 전화를 하자 한 남성이 받더니 황급히 끊어버렸다. 궁금한 게 많아보이셨는데 왜 끊으시죠. 박미란, 김사랑, 이진이… 이름이랑 번호를 35개나 만드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왜 안 오셨죠. 충남대 에브리타임 게시판에서 신고 누적으로 홍보글이 삭제된 다음날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 놀라는 사람도 많았으나 비웃고 넘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더 기분 나쁜 일들을 마주치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여고를 졸업해 충남대라는 공간에 온 이후에는 셀 수 없이 그랬다. 내 이름이 성희롱 단톡방에 오른 적이 있었다. 후배의 후배는 술자리에서 내 동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다른 과 친구는 새벽에 교수에게 전화를 받았댔다. 너 너무 예쁘다는 말을 왜 그 시간에 하시는지. 이 질척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내 학교였다. 학점을 거의 다 채웠을 때쯤에야 그 기분 나쁜 일들이 ‘여성 혐오’라는 말로 묶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쓰던 중, 학과장에게 폭력을 당하고 성희롱 단톡방 사건이 있었는데도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학우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내 학교는 여전히 그런 곳이구나.
  서울에서 ‘페미니스트 시장 후보’ 신지예 씨가 83,000명의 지지를 얻었다. 페미니즘의 ‘페’만 꺼내도 이상한 사람 취급 받던 게 고작 1, 2년 전이다. 세상은 이렇게나 바뀌고 여자들은 그것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글쎄. 내 학교의 시계는 느리다 못해 과거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간 감각에 젖어 살아온 이들은 배 두들기며 ‘열내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었겠지만. 그리고 이 느려터진 시간이 표준인 곳에서 ‘원래 맞는’ 속도로 변화해 온 여자들은 답답하고 외로웠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무언가 이상한 걸, 여자들이 다 알아버렸거든요. 이제 시계를 되돌릴 키가 여성들에게 쥐어졌다. 나는 내일 성희롱 단톡방 사건을 겪었다는 학우에게 연락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싸우면 좋을지 묻겠다. 충남대 페미니즘 동아리 준비 카톡방에 있는 서른 명의 여성 학우에게 그 방법과 연대를 구할 것이다. 다시는 ‘그들’이 등 대고 앉아 자기 하고싶은 대로 활개치게 두지 않겠다. 이건 선전포고다.            BOSHU 에디터 권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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