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과 수능의 영역싸움만 보이는 대입전형 공론화,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교사와 전문가들에게 대입개편은 미래를 위한 준비였고,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는 멀지 않은 현실이었다. 지난 5월 3일 충남대학교 정심화국제문화회관 백마홀에서 열린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국민제안 열린마당’은 교육 관계자들의 선명한 입장차를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 17일까지 진행된 열린마당은 2022년 대학입시전형에 대한 공론화과정의 첫 단추였다. 지난달 국가교육회의에 이송된 대학입시제도 안의 주요 논의 사항은 ▲선발 방법의 균형 ▲선발 시기의 문제 ▲수능 평가 방법이다. 학생부 종합전형과 수능전형 간 적정비율, 수시‧정시의 통합/분리 여부, 수능 절대평가 과목 등 사실상 대입전형과 관련한 모든 사항이 논의된다. 국가교육회의는 발간 자료집에서 “교육부가 제시한 여러 결합 모형이 있다”면서도 “여기에 국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다”고 열어뒀다.

지난 3일 정심화국제문화회관에서 개최된 대입제도개편 국민제안 열린마당에서 한 중학생이 질문을 하고 있다. 사진/ 김동영 기자


  이번 열린마당 행사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공론화위원회는 5월까지 공론화범위를 설정하고, 6월에 공론화 의제가 설정되면 이후로 대국민토론회, TV토론회, 시민 참여형 조사를 실시한다. 이렇게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8월 초까지 권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네 차례의 열린마당을 지켜본 국민들은 우려를 표한다. 학생부종합전형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과 수능전형이 확대돼야한다는 입장이 양보 없이 대립하고 있는데, 이 모습이 꼭 작년 8월 진행됐던 ‘수능개편시안 공청회’에서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교사·전문가, "학종 유지나 확대돼야"

  학생부종합전형을 확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주로 교사나 교육 전문가들이었다. 수능의 단순한 문제풀이 방식이 타당한 교육평가가 아니라는 입장이 주를 이룬다. 열린마당에 참여한 한 교사는 “수능이 EBS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반복해서 학습할수록 점수 받기에 유리한 구조가 만들어졌다”며 “이 때문에 학생들이 대학진학을 위해 재수, 삼수를 거듭하며 몇 년을 허비하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이 일반고 및 자율형공립고 교사 41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73.0%는 학생부종합전형이 학생 선발에 적합한 전형이라고 생각했다.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 개편 특별위원회가 구성한 전문가‧이해관계자 협의회도 수시모집을 유지 또는 확대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수시 모집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정도가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학종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공정성이 담보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3학년과 1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학생부 잘 써주는 학교와 선생님은 따로 있다. 복불복이 너무 심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학생부는 제대로 써주면서 학종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냐”라며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를 요구한 교사들을 비판했다. 어떤 학교에서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와 같은, 학생 개인의 노력과 무관한 환경적 요소들이 너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 한다’는 일부 교사들의 주장과 달리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말도 나온다. 불확실성이 크다보니 학원의 정보에 기대려는 학부모들이 많고, 학교에서도 일부러 외부 입시전문가를 초청해 입시설명회를 진행하며 학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A학우는 “전문가가 와서 강연할 때, 정시 얘기는 ‘수능 점수 잘 받으면 된다’라고 말하고 끝냈다. 대부분의 시간을 수시 전형 설명에 썼다”고 말했다.   

 

다수 국민들, "정시 확대돼야"

  수능 전형의 가장 큰 장점은 ‘공정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교육과정평가원이 제시한 수능개요에도 ‘공정성’과 ‘객관성’이 두 번 나온다. 그 만큼 공정한 시험 진행이 될 수 있도록 국가적인 노력도 보탠다.
  이 때문에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높은 편이다. 지난달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해당 조사 응답자의 50.8%가 학생부종합전형의 감축 또는 폐지를 요구했다. 반면 현행 비율을 유지해야한다는 의견은 19.3%에 불과했다. 수능 전형의 적정 비율을 ‘높은 비중(60%~100%)’로 둬야한다는 의견도 55.5%에 달했다. 다수 국민들은 정시 확대를 적절한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능확대에 교육계 전문가들이 주저하고 있는 이유는 수능이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측정에 적합한지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포스텍 김도연 총장은 지난해 한국연구재단 7주년 기념정책토론회에서 수능시험의 타당성이 낮음을 지적했다. 김 총장은 ‘옳은 것을 <보기>에서 있는 대로 고르시오’라는 문제를 예로 들며 “이 ‘있는 대로’가 있는 문제에서 약 30%가 단수가 정답이었다”며 “이런 어지러운 시험에서 골라내고 찍어내어 정답 몇 개를 더 찾았을 때 학생들은 이를 ‘수능 대박’이라 부른다”고 비판했다. 물론 이는 고등학교 내신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수능 전형은 이 시험 하나로 대입점수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제대로 측정하면서, 동시에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포스텍 김 총장은 앞서 토론회에서 프랑스의 대입시험인 바칼로레아를 소개했다. 김 총장은 “바칼로레아 문제 중 하나로 ‘니코틴 섭취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를 장기적 그리고 단기적 관점으로 구분해서 기술하라’가 있다”며 수능에서는 이와 같은 창의적 문제를 물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안타까워했다.
  바칼로레아는 프랑스의 학생들이 대학입학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응시하는 시험이다. 필기 또는 구술로 시험이 진행되며 모두 절대평가다. 이 시험의 문제는 높은 수준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등이 있다.
  현재 다수의 시‧도 교육청이 인터네셔널 바칼로레아(IB) 도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이석문 제주교육감, 김지철 충남교육감 등 국내 교육계 관계자들이 싱가포르 선텍시티에서 열린 'IB 글로벌 콘퍼런스 2018'에 참석해 IB한글화를 논의했다. 5월에는 한국어 IB교육과정 도입이 IB 공식 주관기관인 IBO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다. 일본은 이미 일본어 IB과정을 학교에 도입하고 2022년부터 서술형 문제를 포함한 새로운 대입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교육과 혁신 연구소 이혜정 소장은 <매일경제>에 올린 칼럼에서 “IB와 같은 서구 선진국의 대입시험은 전 과목 논술형임에도 수십 년간 채점의 공정성 문제없이 잘 운영돼 온 사례들”이라며 IB를 타당성과 공정성을 모두 잡을 수 있는 평가방법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아직 우려를 표하는 교사 및 전문가들이 있는 단계여서 추진 과정에 논의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IB를 가장 먼저 도입하려는 제주도교육청은 올해 시범도입 계획을 밝혔지만 당장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의 반발에 부딪혔다. 한 교육감 예비후보는 “IB 교육과정이 한국 대입제도에 맞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교육현장과 대입전형, 그리고 새로운 교육과정을 다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지만 당장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 발표가 8월 초로 예정된 만큼 기존의 체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 장기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포스텍 김 총장은 토론회를 통해 “3년 정도의 기한을 갖고 전문가들을 모아 전폭적인 권한을 주면서 정부의 교체와 관계없이 일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해 창의적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새 입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