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어"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날씨는 햇볕을 쬔 눈도 녹지 않고, 밖에만 나가면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지는 겨울이었다. 그날, 나는 무작정 차를 끌고 와서는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는데 너는 지금 있는 장소와 약속이 끝나는 시간을 알려줬다. 차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목이 타들어갈 것 같아서 근처 자판기에서 이온음료수 하나를 뽑았다. 평소에 음료수는 잘 사 먹지 않는데 오늘은 이렇게 달고 맛있는지. 목을 축이면서 한쪽 눈으로는 사이드미러를 계속 힐끔거렸다.
  '저 사람인가, 아 아니네'
  내 몸에서 저녁에 먹은 음식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차창도 오르락내리락 가만히 있지 못했다. 이때, 가로등을 등지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잘 보이지 않아도 그 형상만으로 그동안 분주했던 나를 일시정지 시킨다. 그리고 어색함이 약간 있었다. 서투른 운전을 하며 어색했던 차 안에서, 가깝고 편한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많은 얘기를 했는데, 얘기를 하는 동안 눈동자 같은 좋은 것도 봤지만 눈물 같은 나쁜 것도 봤다. 울다 웃기도 하는 네 앞에서 나는 심장이 저려오면서 떨리는 손을 책상 아래 부여잡고 있자니, 올 것이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 이후, 마시다가 반쯤 남은 이온음료 캔은 한동안 내 차에 있었다. 왠지 기억하고 싶은 긴장감을 캔에 남겨놓은 것 같았고, 이온음료 캔을 보면 그 애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 동안 너는 나랑 있을 때 많이 울기도 했는데 점점 울기보다는 많이 웃었다. 웃을 땐 다리의 힘이 풀리기도 했고 좋은 향기가 계속 났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같이 보거나, 각자 잘 알고 있었던 맛있는 식당을 함께 갔었다. 일기에 그 사람과 보낸 일상을 쓰고, 밤늦도록 통화를 하느라 잠을 못 잤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은 처음 만나던 때 쌓여있던 눈이 녹고 그 자리에 벚꽃이 피고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날은 따뜻해지고 만개하여 길에 흩날리던 벚꽃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멀어졌다. 나는 완전히 설명하지 못할 어떤 두려움 때문에 그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누구는 지는 게임이라도 할 땐 재밌다고 하는데, 이 기억들은 재미로만 남기에는 너무 소중하고 선명한 기억이므로, 나는 져도 상관없다고 마음먹지 못하고 특별한 기억을 남겨둔 채 플레이리스트만 돌려보고있다.

BOSHU 포토그래퍼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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