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 황금종려상을 놓치긴 했지만 사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이창동 감독의 복귀작 <버닝> 얘기다.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2017년 홍상수 감독의 <그 후>와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이어 3년 연속으로 한국영화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특히 <버닝>은 국외 언론사의 호평을 받으며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심야시간대 대전의 한 상영관에서 이 영화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 중반에 사람들이 하나 둘 나가기 시작하고, 대놓고 코를 고는 관객도 있었다. 아무래도 늦은 시간대여서 그랬을까. 하지만 다음 날 비슷한 시간대에 다른 영화의 상영관에서 본 관객들의 모습은 달랐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 대해 쓰면서, 왠지 이 영화에서 약혼녀 이네즈를 바라보는 주인공 길의 마음이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낭만적인 도시 파리에 도착한 길은 그곳에서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는지 정착해서 소설가가 되겠다고 한다. 이네즈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오히려 자신의 친구의 남편인 풀의 매력에 이끌려 파리의 미술품들을 함께 보러 다닌다. 그렇게 이네즈와의 사이가 멀어지고 혼자 파리를 여행하게 된 길은 알 수 없는 마차에 이끌려 과거의 파리로 향하게 된다.
파리에 도착한 우디 앨런은 아마 파리라는 공간이 가장 빛났던 시대는 언제였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길을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가 살던 1920년대로 보내기도 하고, 고흐가 살았던 벨 에포크 시대로 여행시켜주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황금시대는 언제일까. 지금은 과거에 비춰볼 때 불온하기만 한 것일까.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천경자 작품전을 보고, 극장에서 예술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다시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면서 여전히 낭만이 살아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