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이론에만 초점 둔 평가, 창의적·비판적 사고 측정에는 소홀

시험, 수용적 사고만 요구돼

비판·창의적 사고 요구 외면

 

학점의 중요성

  “공부 되게 열심히 해서 답도 나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B+가 나왔어요. 최소 A는 받고 싶은데 교수님께 메일 보내 봐도 되나요?”
  매 학기가 끝나고 성적이 발표되는 기간이면 어김없이 학내 커뮤니티에 보이는 글이다. 지난해 12월 올라온 이 게시물에는 “내려가면 내려갔지 올라가진 않는다”며 “기분 나쁘면 점수 더 깎는 교수님도 있으니 주변에 물어보고 괜찮다 싶을 때 메일 보내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 때문에 교수자 이름을 특정해서 묻는 경우도 많다. 이의신청이 어려울 경우 처음부터 확인을 포기하고 C+이하로 내려달라는 요청도 한다. 재수강을 통해 다시 학점을 받기 위해서다. 학칙 상 B이상의 학점을 받으면 해당 강의를 재수강할 수 없다.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학우들이 수강신청 기간에 얻고자 하는 중요한 정보다. 학내 커뮤니티 수강평 게시판에는 “이 교수님 +로 주시나요?”, “조별과제 점수반영비율이 큰가요?”, “족보 있나요?”같은 질문들이 달린다.
  학우들이 학점을 중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교내‧외 장학금, 학생생활관 입사, 복수전공 또는 교직이수, 그리고 일부 대외활동 합격기준도 학점에 따르기 때문이다. 학우들은 학점을 취업에 있어서도 중요한 지표라고 여기고 있다. A학우는 “학점은 성실도를 증명할 수 있는 척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어서울(주) 인사담당자도 지난 4월 23일 자사 페이스북을 통해 “학점 커트라인은 없지만 때때로 면접위원들이 학점을 성실도의 지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점이 낮으면 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

  실제로 학점은 성실성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교육과 혁신 연구소 이혜정 소장이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재직 당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쓴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학생 1,111명을 조사한 결과 학점이 높을수록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설명하시는 모든 내용을 필기한다”에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특히 학점이 높은 학생들은 교수자의 말을 문장의 형태로 최대한 많이 받아 적는 경향이 있었다. 이 소장은 <EBS초대석> 인터뷰에서 “학점이 낮을수록 키워드 중심으로 요점 정리하는 학생이 학점이 낮았다”며 “요점 정리 식으로 공부했더니 학점이 낮아서 최대한 많이 쓰는 방식으로 바꿨더니 학점이 높아졌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에 대해 이 소장은 “학점 구간 별로 뚜렷한 경향성 차이가 나타났다”며 “처음에는 전공 별로 공부법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다각도로 접근해 연구해봤지만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방식의 차이는 있었지만 문장의 형태로 공부하는 방식이 시험준비에 유용하다는 점은 학우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상대학에 다니는 A학우는 “아무래도 시험이 대개 서술형으로 출제되다보니 배운 내용을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도 “교수님이 가르쳐준 것 내에서 문제가 나오니 범위를 한정해서 최대한 암기한다”고 말했다. 또 “배운 내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라도 답안을 쓸 때 어떤 식으로 써야하나 다시 고민해서 쓰는 연습을 한다”고 답했다.
  사회과학대학에 다니는 B학우는 “시험 질문이 간단했다. 그래서 배운 내용대로 다 써서 제출했는데도 빨리 나온 편”이라면서 “아무래도 상대평가다보니 질문 내용보다 심화된 교수님의 설명이나 예시를 더 쓰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탐구할 여유가 없는 학우들

  대부분의 대학 시험은 수용적 학습능력을 중시한다. 이 소장이 서울대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비판적 사고력이 수용적 사고력보다 낮다고 답한 응답자가 학점이 높을수록 많았다. 최대한 교수가 원하는 답변을 준비하고, 교수와 다른 시각을 시도하다가도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포기한다. 결국 교수가 전달한 다량의 ‘결과물’을 습득하는 데 초점을 두고 암기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학부 수준에서 수용적 학습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소장은 이런 의견에 두 가지 전제가 있다고 본다. 먼저 비판적‧창의적 학습은 수용적 학습 이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배운다’는 행위 자체가 수용적인 태도를 요구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소장의 생각은 다르다. 이 소장은 저서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과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은 단계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수업에서 동시에 적용되고 연습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판적 사고력도 발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충분히 연마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학우들은 교수자의 강의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다른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한 학우는 “시험범위도 많아 일일이 신경 쓸 수 없다”고 답했다. 강의내용 대부분이 정보 전달방식이어서 그 정보들을 수용하는 데에 쓰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비판적 사고의 필요성

  비판적 사고의 필요성은 교육계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2009년 12월 대학교육협의회가 주최한 <대학교육 정책포럼>에서 김영길 당시 한동대학교 총장은 “21세기 대학은 교육 내용과 함께 그 평가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20세기 대학교육이 알려진 지식 전달, 주입 및 암기 교육이었다면 21세기에는 새로운 문제 발굴 및 해결, 문제제기, 토론 및 도전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평가방법도 학업지식평가에서 학습능력평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이 말한 학습능력평가는 미국의 교육지원위원회(CLE)가 2002년 개발한 것으로 비판적 사고, 문제해결능력 등을 평가한다.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는 2015년 KBS <명견만리>에 출연해 “이제 세상은 단편적인 지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앞으로 세상에서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능력이다. 대학은 바로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는 터전이 돼야한다. 대학의 이름에 걸맞은 진정한 배움을 추구하는 것, 대학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대학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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