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부양

  우리는 소설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낭만적인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비관적인 말일지도 모른다. 소설 같은 삶이란 게 말이다. 과거의 일을 끌어와 보여주는 것. 이미 결재된 서류를 다시 읽는 것. 소설 같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문득 요즘 초등학생 친구들은 ‘접속’이란 말을 쓸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막 개인pc가 보급되던 때였고 인터넷도 전화선을 연결하던 시대였다.(물론 나 또한 당신과 같은 세대임을 잊지 말아달라!) 인터넷은 ‘접속’하는 것이었고 컴퓨터는 허락받고 켜고 끄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터넷은 켜져 있고 내 SNS계정은 내가 보지 않아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이런 때에 접속이란 말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미 우리에게 인터넷, 가상현실은 접속의 대상이 아닌 또 하나의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어벤져스가 유명하다 해서 시간을 쪼개 심야영화로 봤다. 영화 값이 아무리 올랐다지만 그 돈 내고 볼 만한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타임스톤’이란 게 흥미로웠다. 그 돌을 가지고 있으면 시간을 자유자재로, 공간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었다. 지구엔 또 ‘마인드 스톤’을 가진 자도 있었다. 그 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사물에 사용자의 의지를 넣을 수 있다는 설정이였다. 그러다 왜 하필 이 많은 우주에서 지구에만 두 개의 돌. 그것도 하필 ‘타임스톤’과 ‘마인드 스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한 비약이지만 ‘타임스톤’, 그리고 ‘마인드 스톤’은 이 시대의 정보통신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오늘날은 시간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이지 않을까? 과거의 정보를 오늘의 내 앞에 가공되지 않은 날것으로 존재시키고, 거대한 정보의 힘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왜곡 나아가 세뇌도 시킬 힘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악영향을 지구 영웅들까지 날아와 막아보지만 거대한 힘에 의해 무너진다. 그 힘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시대의 흐름이다. 인구의 폭발과 생태계 파괴. 그리고 그것들을 가능케 한 지식 정보의 발달. 뭐 그런 시시콜콜한 상상이다.

  세상이 멀미날 정도다. 어제의 관념과 정의는 오늘에 와선 힘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란 위기감이다. 시간이 사라진 시대엔 모든 게 섞인다. ‘우리 땐 그랬어’ 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 관습이란 건 더 이상 남아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건 쉬지 않고 움직이는 듯 하다. 아니 거대한 힘에 대항하기 위해선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 ‘타임 스톤’을 가진 자가 그랬듯 말이다.

  요즘 고전 책들에 다시 손이 간다. 나만의 조그만 기준이라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서다. 대학생이라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이 폭풍 같은 시대 속에 아직은 보금자리가 남아있고, 아직은 나갈 준비를 해도 되는 때란 생각이 들어서다. 대학생이니까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공부해도 되니까. 올해는 내 기준하나 만들어 놓고 떠나야겠다 생각했다.

충남대교지 편집장 황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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